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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나 예찬을 모르고 피상적으로 살다보면, 가을은 속절없이 스쳐가고, 그렇게 노년에 이르면 삭막한 자기 내면의 뜰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가을 잎은 곱게 물들어가고, 열매들이 여물어 가며, 자연의 소리가 귀 언저리를 맴돌면서 보고, 듣고, 느끼게 하는 사색의 계절입니다.

관심이 없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고, 향기 속에 있으면서도 맡지 못하며, 온갖 계절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대 베단타의 사상가가 말하기를,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시각장애자는 없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청각장애자는 없다.” 라고 했습니다.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아니해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뭐지 않아 우리집 울타리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터인데 굳이 단품구경을 가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찬연한 단품 숲속에서도 감동이나 예찬을 모르고 피상적으로 살다보면 가을은 속절없이 스쳐가고 그렇게 노년에 이르면 삭막한 자기 내면의 뜰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젊은 시절 생활비 버는 법을 익히다가 삶의 의미를 배우지 못하고, 노년의 가을 이르러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답니다.

잠시 가을 나들이를 떠나보면 나이와 비교되는 풍자적인 배경을 통해 자기 집착의 세계에서 짐짓 벗어나게 되고 심경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들녁은 야생화 하나까지도 벌 나비에게 아름다움과 향기 그리고 꿀을 베풀며 실속있게 가을을 갈무리하는데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게 합니다.
길들이고 나면 이제까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대상도 관심이 생기며 그 세계가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잘 마른 쌀 하나에 들어 있는 수분은 얼마되지 않지만, 그 쌀이 되기 위해 볍씨부터 논에서 자라 벼로 익기까지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먹은 것은 다 내가 되었고, 내가 아는 것도 나와 함께하고 있으며, 빠를수록 좋은 것도 있지만, 발효되는 시간이나 익어가는 시간이 중요한 것도 많습니다.
씨앗 하나도 저절로 이루어진 것 없이 숱한 성장관정이 있었으며, 어떤 것은 쭉정이 일뿐 실속이 없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핑계를 잘 대는 사람은 거의 좋은 일을 하나도 해내지 못하고, 내일로 미룬 일은 내일은 더 하기 싫으며, 계산과 두려움 때문에 뒤로 미룬 날들은 놓친 날들입니다.
슬럼프란 말은 자신을 속이는 말이 되기 쉬우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인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래저래 게으름을 피우다가보면 계속 나태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미셀 투르니에는 산문집 [예찬 Celebrations]에서 ‘볼바시옹(Volvation)’ 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 뜻은 고슴도치가 조금만 위험이 닥쳐도 몸을 둥글게 움츠리는데 그것은 싸우지 않고도 자기를 방어할 줄 알고, 공격하지 않으면서 상처 입히는 법이랍니다. 그것이 고슴도치식의 수동적인 방어법인 ‘볼바시옹’ 이라는 것이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싫어하고 세상을 행해 마음을 닫는 반사작인 행동을 비유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부칮치지 않고 살기 어려우며, 고슴도치처럼 방어할 줄도 알아야하지만, 자기방어의 움츠림이 길어지면 자칫 발전적인 일에도 도사리다가 놓치게 됩니다.

두려울 땐 움츠렸다가 새롭게 도전할 때, 생의 의지를 갖게 하며, 기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면 향상의 세계가 열려간다고 합니다.
금을 캐는 광부들에겐 수많은 돌들이 골칫덩이가 아니라 그 속에서 금을 찾는 일일뿐이며,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치관으로 길들여 가야 자아가 빛이 난다고 했습니다.

물이 불을 끄고, 불은 물을 말리기 때문에 서로 상극관계지만, 태양과 빗속에서 생명들은 존재하고 있으며, 방어와 공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로워지고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자기 안에서 깨워야 하고, 삶의 의미와 보람도 어떤 계기가 있어야 자기 자신에게 묻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방울에는 무지개의 자성이 없지만 여러가지 제 요소가 무지개로 나타날 수 있도록 조성되면 즉 도는 인연이 어우러짐으로써 무지개라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많은 인연을 만나지만, 그중에서도 좋은 인연으로 오래 오래 함께하는 이연이 있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 2017년 10월 17일 보스톤 문수사에서 온 편지 중에서 -

  Name:    TGT

   Posted : 11/3/2017 || 8:4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