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문학 산책 - 마운 김형범




   Vol-No : 07-35 Author : 마운 김 형범
고시조 산책 -15 청음 김상헌의 시조

update 9/4/2015



한국의 155마일 휴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북의 목함지뢰 도발로 야기된 한국과 북의 대결은 전쟁재발 일보전의 위기상황에서 한국의 원칙을 고수한 협상의 결과로 극적인 합의를 보아 전쟁의 검은 구름은 걷히고 다시 이전의 긴장완화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합의 사항의 하나로 9월 7일부터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실무접촉이 시작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적 남침으로 한국군이 밀리고 밀려 대구, 부산 등 영남지역을 겨우 발판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U.N.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 성공으로 북으로 북으로 진격하여 압록강까지 이르렀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남쪽으로 철수할 때 북에 살던 우리의 부모 형제 자매가 빠르면 일주일, 아니면 보름, 늦어도 한달이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소리에 지기의 고향을 등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북에 두고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그것이 벌써 올해로 65년이 되었다. 그 해에 태어난 사람이 벌서 65세가 되었다. 그 당시 피난온 사람들은 거의 70세 이상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눈감기 전에 고향에 한번이라도 가서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 60년 이상 가슴 속에 애타게 묻었던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또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 실향민 (失鄕民) 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고향을 떠날 때 길어도 한달이면 고향에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아무런 노래도 시도 읊조리지 못했다. 나도 1950년 12월에 동해안에서 어선을 타고 피난을 왔다. 나는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내 가족인 아내와 아들들, 며느리, 손자, 손녀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의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북의 내 고향으로 달려가서 나의 엄마 (살아계신다면 올해 111세), 누님들과 여동생들과 그들의 가족, 사촌들, 고종사촌들, 외사촌들, 이종사촌들과 나의 인민학교 동무들, 그리고 고향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볼 생각에 심장이 뛰고 있다. 그러나 그 전에는 만나보지 않으려고 한다. 혹시 가족들이 나의 생사를 알고싶어 애태우고 있다면 정말 죄를 짓는 나의 이기심을 용서하기 바란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대한민국으로 도망간(?) 반동분자가 나타나서 그래도 그대로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생명의 위협이 닥치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 때문이다.

이번 호에는 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淸)나라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斥和派)의 선봉에 섰다는 이유로 중국 심양(瀋陽)에 잡혀 가면서 고국을 떠나는 심정을 읊은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시조를 산책하기로 한다.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古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단어뜻
- 삼각산(三角山): 서울의 북쪽에 있는 산. 백운대, 국망봉,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있어 지어진 이름. 비봉에는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가 있음. 산 위에 북한산성도 있음. 일명 북한산 혹은 화산(華山) 이라고 함.
- 한강수(漢江水): 현재 서울의 남과 북을 가르는 강. 한강. 북한강과 남한강이 경기도 양주에서 합류되어 황해로 흘러가는 강. 한강 또는 한수(漢水)라고도 함. 용비어천가에는 ‘한수”라고 기록됨.
- 삼각산과 한강은 서울을 대유하는 말도 됨
- 고국산천: 고국(내나라)의 산과 물. 강산
- 하랴마는: 하겠느냐마는. 할 것인가마는
- 하: 하도. 매우. 하다(多, 大)에서 어간이 전성하여 된 부사
- 수상하니: 일상과 달라 이상하니
- 올동말동: 올지 말지. 돌아올 수 있을지 말지

김상헌(金尙憲) [1570(선조3)년 – 1652(효종3)년]
호: 청음(淸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명(明) 나라를 존숭하는 숭명파(崇明派)였고, 신흥국인 청(淸)에는 반대함. 대청파(對淸派)였다. 병자호란 [1636(인조14)년] 때에는 예조판서로서 척화(斥和)를 주장하여 그 선봉에 섰다.
척화란 화의(和議)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화친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는 주전파(主戰派)이다. 현대에서는 매파, 독수리파라고 하는 강경파이다. 병자호란 때의 척화신으로는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의 삼학사(三學士)가 유명하다. 화친을 주장하는 사람은 주화파(主和派)라고 한다. 현대에서는 비둘기파라고도 하는 온건파이다. 주화파에 앞장 선 이는 최명길이다. 청나라와 강화를 주장하여 강화가 결정된 다음 항복문서까지 초안했다. 김상헌은 척화를 주장하여 끝까지 싸워야 된다고 했으나 강화가 성립되어 인조가 삼전도에 나가서 청나라에 항복하자 패전국의 신하로 승전국인 청나라로 잡혀가게 되었다. 이 때에 이 시조를 읊었다. 삼각산과 한강수는 조선의 왕도(王都) 한양을 대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고국도 나타내고 있다.

초장에서는 삼각산을 부르며 나는 끌려간다. 한강수를 부르고든 그래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중장에서는 내가 어찌 고국산천을 버리고 스스로 청나라로 가려고 하겠느냐 그러나 종장에서는 우리나라가 청나라에 패한 이 세대가 너무나 많이 정상이 아니니 내가 다시 고국에 꼭 돌아오고 싶지마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은연 중에 표현하고 있다. 김상헌은 처음부터 숭명대청 감정에 결연하였으므로 불굴의 저항과 꿋꿋한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일차로 1640년 청나라가 심양으로 잡혀가서 1642년에 물러나왔으나 그 당시 청나라와 밀무역을 하던 이계(李烓)의 무고로 다시 심양에 잡혀갔다. 이 때에는 주화파였던 최명길도 잡혀갔다. 1645년에 풀려나 귀국했다. 김상헌은 서인(西人)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가담하지 않은 청서(淸西)파 영수로서 1624(인조2)년에 다시 등용되어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대사성, 대제학 등을 거쳐 예조, 공조, 형조, 이조 판서를 역입했고, 그 후 좌의정을 역임했다.

이 시조는 청구영언에 실려있다. 그런데,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역사 드라마 ‘화정’에 나오는 소현 세자의 작품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소현 세자는 인조의 장남으로 세자에 봉해진 후 병자호란 후 아우인 봉림대군[뒤에 효종(孝宗)]과 함께 볼모로 청나라 심양에 잡혀갔다가 1649년에 잠시 귀국했다 다시 돌아가 있다가 1644년에 과학, 천주교에 관한 번역 서적 등을 얻어 가지고 귀국했으나 2개월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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