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문학 산책 - 마운 김형범




   Vol-No : 07-39 Author : 마운 김 형범
고시조 산책 -16 방촌 황희의 시조

update 10/2/2015



요즘 날이 지날수록 밤의 달은 점점 더 둥글어져 간다. 며칠수면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 한가위가 되는데 미국에서 올해의 보름달은 Super moon이 된다고 하고 한국에서도 Super moon이 된다고 한다. 금력 8월도 되기전 추석 성묘를 위한 벌초가 시작되어 한국의 고속도로는 정체 현상이 일어났다. 추석에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의 묘에 제사도 올리고 가족끼리 즐겁게 만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car 를 이용하는 줄로 알았다. 한국의 T.V가 귀성 풍경을 보여주며 고속도로의 차량행렬만을 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기차, 버스, 비행기, 선박도 이용하는 것을 보았다. 올해는 추석인데도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소위 “알바” 를 하면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이 많고 학생들도 추석 연휴에 학원특강을 듣는다고도 한다.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들, 고향이 서울인 사람들도 내려갈 고향은 없다. 더 억울한 사람들은 글로발 시대인 현대에도 고향이 이북인 사람들이다. T.V 에서 80을 훨씬 넘은 사람이 ‘오마니, 오마니’를 부르며 보고싶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저 나이에도 눈물은 흐르는가, 나도 눈물이 흐른다.

65년전 고향에서 부모님, 친척과 형제, 자매들과 같이 보낸 추석이 생각난다. 그 이후로는 고향에 갈수도 없고 오늘날까지 통일의 날만을 고대한다. 그 해는 1950년이다. 6.25사변,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이다. 그해 추석도 내기억으로는 양력 9월에 있었던 것 같다. 전쟁중이 아니어서도 이북은 물자가 풍부하지 못해서 홍동백서( 紅東白西) 등의 격식은 따지지도 못했을 것 같고 해가 났다가 구름도 끼고 비도 내려서 분위기는 우울했던 것 같다.

추석(秋夕) 은 우리나라의 고유명절의 하나로 음력 8월 15일에 지낸다. 양력으로는 해마다 지키는 날이 일정하지 않다. 신라시대의 가배(嘉俳)로 부터 내려와서 벌초도 하고 성묘도 행하고 햅쌀로 송편을 빚어서 차례를 지낸다. 풍년이 들면 더 풍성하고 기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농본국(農本國)이었던 한국의 추수감사를 드리는 명절이었다. 팔월의 대보름달은 그 얼마나 둥글고 희고 풍만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웠던가.
이번호에는 이런 한가위에 어울이는 방촌(坊村) 황희(黃喜)의 시조를 산책하기로 한다.

대초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의 뜯들으며
벼 빈 그루에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익자 체장사 돌아가는 아니 벅고 어이리.

단어 및 어구의 뜻
대초볼: 대추의 볼
골: 골짜기
뜯들어며: 떨어지며
벼 빈 그루에: 벼를 베어낸 그루에
그루: 나무나 곡식의 줄이긔 아랫부분
나리는고: 내리는가? 기어다는가? (의문형 어미)
체: 가루를 곱게 쳐 내거나 액체를 밭아 내는데 쓰는 제구
돌아가니: (여기서는) ‘돌아 다니니’의 뜻
어이리: 어찌하겠는가?

현대역 감상
이 시조는 평화로운 한국 시골의 풍경화이자 한폭의 풍속도다. 대추나무가 붉에 물들어 익고 밤나무도 있는 우리의 마을이요, 풍년 들어 벼를 베어낸 논에 게가 기어다니고 있는 가을이요, 이 속에서 시인은 마을에 돌아 다니는 체장사를 불러 세워 새로 빚은 술을 걸러 마시려 한다. 넉넉하고 풍성한 가을 농촌이 풍요롭고 흐뭇한 태평성대의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있다. 팔원 한가위의 가을걷이에 즈음하여 웃음과 즐거움이 절로 묻어나는 노래다.

대추도 붉게 잘 익은 골짜기에 밤도 풍성하게
익어 저절고 뚝뚝 떨어지며
벼를 베어낸 그루가 있는 논 바닥에는 게까지
어찌 기어 다니는가?
때마침 빚어 놓은 술이 알맞게 익었는데
체장사도 돌아다니며 웨치니 한잔 아니 마시고
어찌 견디겠는가?

우리 한국어는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무엇이든지 다 ‘먹는다’로 표현한다. 영어로는 액체는 Drink (마신다)로 표현한다. 우유를 마시고, 물은 마시고, 술도 마신다고 표현한다. 한국어도 마신다는 말이 있어도, 물도 먹고, 우유도 먹고 술도 먹는다고 한다. 5000년 역사에 굶주리고 지낸 세월이 더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현대 T.V 드라마에서도 ‘어머니’의 또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밥은 먹었니?’의 대사는 ‘밥을 먹었느냐’의 표면상의 뜻을 넘어서 그 자식 또는 사람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모든 크고 넓은 사랑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 황희(黃喜), 1363(고려 공민왕 12년) – 1452 (조선 문종 2년)
호: 방촌 시호; 익성(翼成)
고려말 개성출신으로 우왕 2년 1376년 한국나이 14세에 복안궁 녹사(福安宮錄事)가 되었고 창왕1년 1389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고려가 망하자 많은 고려 신하들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은거생활을 했다. 그러나 조선 태조 이성계의 간곡한 요청으로 1394년 (태조 3년)에 조선조에서 벼슬을 살기 시작했다. 이것은 고려유신의 편에서 보면 배신이요 배역이지만 봉건시대의 역성혁명(易姓革命)에서는 임금만 바뀌는 것이지 백성은 똑같은 사람들이라 백성을 봉사한 점은 훌륭한 일이라 하겠다. 그는 세종시대 영의정으로서도 18년 벼슬살이를 해서 많은 치적을 남기고 조선초기에 국가의 기초를 안정시키는데 많은 힘을 보탰다. 태종때에는 왕의 처족(妻族)들이 횡포를 부리자 이를 제거했고 세자 양녕대군의 폐출을 반대했다. 드디어 양녕대군은 폐출되고 충녕대군 (뒤에 세종)이 세자로 책봉되는 일에도 반대하다 서인(庶人)이 되어 교하(交河)로 유배되었고 이어 남원으로 이배 (移配)되었다. 세종 4년(1422)에 풀려 나와서 1427년에 좌의정이 되었고 1430년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431년에 복직되어 영의정이 된후 1449년 치사(致仕)할 때까지 18년간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농사의 개량, 예법의 개정, 천첩 소생의 천역 면제 등 훌륭한 업적을 남겨 세종의 가장 신임받는 재상이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황희 정승의 일화처럼, 한가지 일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옳다 하고 그게 아니라고 저렇게 말하는 사람도 옳다 하고 그러면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느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옳다고 한 무골호인 (無骨好人)풍의 포용력과 관용을 가지면서도 원리 원칙에 어긋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반대로 하는 참다운 사람이었다.
인품이 원만하고 도량이 넙고 착하고 무게가 있어 벼슬살이 하는 동안 백성에게 모범됨이 많았고 생활이 청렴한 명신(名臣)과 현상(賢相)으로 후세의 추앙을 받고 있다.

이시조는 진본 청구영언에 실려있다. 또다른 한수의 시조;
강호(江湖)에 봄이드디 이몸이 일이하다
나는 그믈 깁고 아이는 밭을 가니
뒷뫼헤 엄기는 약을 언제 캐려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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