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문학 산책 - 마운 김형범




   Vol-No : 07-44 Author : 마운 김 형범
고시조 산책 -17. 삼봉 정도전의 시조

update 11/6/2015



이미 몇 번 말했지만 역사와 문학은 일치하지 않는다.
역사를 문학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역사는 객관적 사실의 기술이요, 문학은 작가의 주관적 견해와 현실에 있음직한 가공의 사실을 창작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기술된 사실에 근거하여, 후세의 역사가들이 각자의 사관으로 역사를 판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50년이상은 시기를 거쳐서 사관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문제되고 있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국정화’라는 단어 때문에 반대 여론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교과서 ‘국정화’는 전근대적 사고라고 생각하여 하나의 이론보다는 여러가지 의견을 배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좋다고 치더라도 현 한국 고등학교 교과서 ‘한국사’에는 분명 좌편향적인 서술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된다는 것이 첫째 중요한 사실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올바르고 정확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에 모두 동의하여야 한다.

방법론이 ‘국정화’이어서 문제라면,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정확한 한국사 교과서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서 ‘국정화’에 여러 분야 또는 사관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정확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집필 의뢰조차 받지 않은 학자들이 집필거부부터 한다는 것은 우리 속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 데, 김치국부터 마신다’는 말을 한 번 상의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요사이 한국 TV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방영되고 있다.
조선조 세종때 권제, 정인지 , 안지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최초의 악장으로 지은 용비어천가 제 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건국의 위대함과 건국의 어려웠음과 조선 건국이 하늘의 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성계는 조선 건국 후, 아버지는 환조, 할아버지는 탁조 또는 도조, 증조할아버지는 익조, 고조할아버지는 목조로 임금으로 추존하였다.
세종은 여기에 이성계( 태조), 이방원( 태종)을 추가하여 육룡으로 만들어서 이 노래를 짓게 했다.
TV ‘육룡이 나르샤’는 이 ‘ 육룡’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을 섞어서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가 아니라 문학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정도전은 조선 건국에 관한한 여러편의 문학에 꼭 등장한다. 작가마다 정도전의 인물평이 다르다. 심지어는 ‘정도전’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까지 있었다.

이번 호에는 이 정도전의 시조를 산책하기로 한다.

선인교 나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르니
반천년 왕업이 물소래 뿐이로다.
아해야 고국흥망을 물어 무엇하리요.

단어.어구의 뜻
선인교: 개성의 자하동에 있는 다리 이름
나린 물이 : 흘러 내리는 물이
자하동: 개성의 송악산 기슭에 있는 마을의 이름
흐르르니 : 흐르니, 음률을 고르기 위해 ‘르’가 덧쓰였음
반천년 왕업: 5백년 동안의 고려 또 왕씨의 통치 대업
고국흥망: 역사가 오랜 내 나라의 흥하고 망함

현대어 감상
정도전은 자기가 벼슬하던 고려를 무너뜨리고,새왕국 조선 건국에 심혈을 기울여
성사시켜 충신이 된 사람이다.
그는 고려, 조선 두 왕조를 섬기면서 그토록 영화를 누렸던 한 정치인으로 새 왕국 조선의 허울을 벗고 옛 고려의 한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인간적으로 많이 괴로와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인생 무상을 말하려 하는 듯도 하다.
종장에서는 자기의 고뇌를 애써 외면하고 새로운 앞 날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개성의 선인교나 자하동은 고려를 은유하고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개성의 선인교에 흘러내리는 물은 지하동으로 예나 다름없이 흐르고 있다.
이제 500년간의 고려의 왕업은 이 물소리처럼 흘러갔고, 흐르고 또 계속 흘러 갈 것이다.
너무나 허무하구나. 고려가 망한 지금 고려에 연연해서 무엇하겠는가?
( 새 왕국인 조선에서 나의 웅지를 펴보아야겠다.)

지은이 : 정도전(?---- 1398 조선 태조7)
호: 삼봉 시호: 문헌

태어난 해를 알지 못한다. 1362년( 공민왕11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했다. 1383년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의 참모가 되었고, 이듬 해 정몽주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후에 이성계의 아래에서 조준의 전제개혁안을 단행하도록 건의하고 척불을 주장하여 조선 개국의 정지 작업을 시작했다.
1391년 이성계가 군사권을 장악하여 삼군도총제부를 설치하자, 우군도총제가 되었다. 정몽주가 살해된 뒤, 조준,남은등과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을 건국한 후 개국일등공신이 되었다.
현대의 서울의 노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새도읍 한양을 칭송하는 ‘신도가’악장을 지었다.
조선 초기의 제도를 확립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성계의 계비 강씨 소생의 어린 왕자 방석이 세자에 책봉된 후 불만을 품은 정안군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에 정도전은 참수되었다(1398년).

그는 유학의 대가로 조선 개국 후의 군사, 외교,성리학, 역사, 행정, 저술등의 다방면에 걸쳐 초기의 건국 작업에 활약했으며, 척불숭유를 국시로 삼게 하여 이루게 하였다. 왕궁 안의 전각과 대문의 이름도 자신이 짓고, 글씨도 쓸 정도로 글씨에도 뛰어났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칭송한 아장 정동방곡, 이성계가 몽고의 나하추를 쳐몰아낸 일을 읊은 납씨가,이성계의 공덕을 찬송한 문덕곡 등 악장이 있다.
충청북도 단양의 남한강에는 정도전이 지냈다는 도담삼봉이 있다.



상기 내용은 본지(TheGrapevineTimes)의 편집방향과 무관함.

- TGT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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