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문학 산책 - 마운 김형범




   Vol-No : 08-11 Author : 마운 김 형범
잠곡 김육의 시조

update 3/11/2016



인간은 혼자서 살지 못하고 어울리어서 살아간다.
가정도 공동체요 사회도 공동체다. 국가가 가장 큰 공동체로 여겼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전세계를 지구촌이라 지칭하여, 현대는 이 지구도 한 공동체가 되었다.
우리는 현재 보스턴에 살고 있지만 방송, 통신 등 모든 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보스턴지역, MA지역, 미국, 한국, 세계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즉시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분화되어, 우리는 최소한 어느 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
인간의 직업도 더 세분화되어, 그 직업의 명칭도 알기 힘들어졌다. 각 자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활력을 더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도 너무나 여러가지가 있어서 자신이 잘 활용하여야 한다.
조선조는 건국 초부터 성리학에 근거한 유교를 바탕으로 출발하여 18세기 영.정조때 일어난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실학으로 사고가 변하여 가게 되었다. 그러나 양반, 귀족과 평민으로 나뉘는 계급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현대와 비교하면 모든 것이 단순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성은 동서양과 시간을 막론하고 근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공동체를 묶어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서로 같이 모여서 놀면서 즐기며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현대와 같이 놀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한 것도 아니고, 음식도 다양하지 않았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놀며 각자의 마음도 펼쳐 보이는 사귐을 가진 시조를 산책하려한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를 청해옴세
백 년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단어와 어귀의 뜻
부르시소 : ~소는 청유형의 의미
시 : 여기서는 비존칭 보조어간
청해옴세: 청함세, 청하겠네
덧 : 동안
백년 덧 : 백년 동안, 일생동안

현대어 산책
시조 전체 분위기를 보아서는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끼리의 생활로 보여진다.
그렇다고 아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는 아니고 즉 그렇게 친하지도 않지만 자기의 일을 의논하고 싶은 상대는 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술이 공동체를 이어주는 큰 구실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술은 무어라 해도 막걸리다. 탁주라 하여 청주와 구별되었다. 내 어릴 때 고향에서는 감주가 있었다.
식혜와 비슷하나 알콜 성분은 좀 있었던 것 같다. 남쪽 지방에서는 단 술이라고 하는 것 같다. 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주도 있었다. 현대와 같이 여러가지의 안주가 아니라 주로 부침개였으리라. 양반. 귀족은 여기에서 시를 읊었다. 적당히 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활력을 얻었다.
자네 집에서 빚은 술이 익으면 꼭 나를 불러주오.
나의 집 정원에 꽃이 활짝 피면 나도 자네를 청하겠네.
술을 마시며 일생동안 겪어야 하는 근심, 걱정과 괴로움을 잊어버릴 수 있게, 같이 시도 읊어 보려고 하노라.
이웃끼리 평화롭게 살아가던 조상들의 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술이 익으면 서로 나누어 마시고 꽃이 필 때는 꽃놀이를 즐기고자 하는 것은 한 평생, 걱정, 근심을 떠나 풍류를 즐기며 부귀공명을 꿈꾸지 말자는 깨끗한 생활을 원하는 마음이다.

지은이 : 김육( 선조13년 1580년 ~ 효종9년 1658)
호 : 잠곡 시호:문정 본관 : 청풍

인조2년 1624년에 증광시에 급제하고, 인조16년 1638년에 충청감사를 지내고, 효종6년 1655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경제정책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서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을 시행했다.
당시 400년동안 사용하던 구식역법을 개정하여 효종4년 1653년부터 시헌력이라는 새 역법을 시행했다.
교통수단으로 수레를 제작하여, 말에만 의지하여 사람이나 물건을 운반하던 불편을 없앴다.
농지에 물을 대는 관개사업에 수차의 사용을 주청하여 인조22년1644년에 황해도, 평안도에서 실시하게 했다. 효종2년 1651년에는 주화로 상평통보가 유통되게 했고, 병자호란으로 소실된 활자를 새로이 제작하여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다.
그의 경제학은 우리나라 실학의 원조인 반계 유형원에게 큰 영향을 끼쳐 실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저서로는 대표적인 것이 ‘해동명신록’과 ‘송도지’가 있다.

지은이 김육의 본관을 밝히는 특별한 이유는 나도 본관이 청풍이기 때문이다.
우리 고향에는 족보는 종가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나는 나의 족보를 본적이 없다.
나는 대학 입학하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우리는 함경남도 이원 입복시조(성명미상)의 17손이 된다는 말씀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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