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문학 산책 - 마운 김형범




   Vol-No : 09-30 Author : 마운 김 형범
38. 환희의 팔월 - 한훤당 김굉필의 시조 -

update 8/4/2017



이제 8월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된 기쁨과 감격을 마음껏 소리 높이 외쳤던 환희의 달이다. 8월15일이 그날로 해마다 기념하여 광복절로 지낸다. 올해는 72주년이 된다. 광복해방동이들도 이제는 72세가 된다.

나는 6.25사변 중에 피난 와서 그 다음해 1951년에 부산에서 중학교에 입학했다. 한창 전쟁중이었다. 국어 교과서에는 시인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시도 있었고 시인 박목월의 ‘청노루’도 있었다. 오영수 선생님의 소설 ‘윤이와 소’ 도 있었다. 우리는 다행이도 담임 선생님이셨던 오선생님이 직접 가르치시는 기쁨도 누렸다. 암울하고도 괴로왔던 전쟁 때에도 음악 교과서에는 악성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 중 제 4악장의 합창곡이 실려 있어서 음악 시간에 배웠다. 내가 기억하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찬양하라 노래하라 창조자의 영광을, 뻗어나는 초목들은 쉬지 않고 자란다. 봄비 내려 새싹트는 나무순을 보려마. 햇볕받아 웃음 짓는 꽃봉오리 보려마.’ (*이 곡은 지금의 찬송가에도 실려 있다) 그리고 이태리 가곡 ‘산타루치아’도 있었다. 일선에서의 비참한 전쟁은 모르고 이런 노래들을 우리는 부르며 자랐다. 3년동안의 전쟁이 휴전된 다음 해 우리는 졸업했다. 졸업앨범을 받아들고 내용을 한장씩 넘기며 감격해 하다가 맨 마지막 장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었다.

편집위원들의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5,6명의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해말갛게 노는 사진에 ‘너희들은 알지 말아라. 전쟁도 피난살이도.’ 부산, 경남 지방의 아이들은 전쟁도 모르고 피난살이도 모른다. 다만 전쟁과 피난민 때문에 괴롭고 힘들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 편집위원들이 전쟁과 피난살이에 그렇게 마음이 아팠을까. 물론 그 당시에는 모든 국민이 다 겪은 어렵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어느 광복절날에는 길가의 호박넝쿨의 잎들마저 출 늘어져서 무척 더웠다. 한국은 원래 온대 지방이다. 문명국의 중심지대다. 아무리 세상이, 세월이 바뀌어도 한여름밤에 열대지방이 되는 온대지역이 웬 말인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마음으로 기쁨과 고요한 마음을 노래한 다음의 고시조를 산책하기로 한다.

삿갓에 도동이 입고 세우중에 호미메고
산전을 흩매다가 녹음에 누웠으니
목동이 우양을 몰아 잠든 나를 깨와다


단어와 어구 풀이
삿갓: 볕이나 비를 피하기 위하여 머리에 쓰는, 대오리나 갈대로 거칠게 엮에서 만든 갓.
도롱이: 짚이나 띠 같은 풀로 엮어서 끝이 너덜너덜하게 하여 에깨에 걸쳐 둘러 입는 우장의 한가지. 흔히 농부들이 삿갓을 쓰고 입음.
세우중: 가는비 속. 가랑비 속.
산전: 산에 있는 밭.
흩매다가: 흩어지게 매다가.
매다: 논이나 밭에난 잡풀을 뽑다.
녹음: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의 그늘.
우양: 소와 양 또는 염소.
깨와다: 깨우도다. ~와다: 감탄 종결어미

현대어 산책
무더운 여름에 머리에 삿갓을 쓰고 몸에는 도롱이를 입고 가랑비 속에서 호미를 메고 농사일에 바쁜데 [초장]
산에 있는 밭을 한참 힘들게 매다가 그래도 한가롭게 쉬려고 나무그늘 아래 누워서 낮잠을 잠깐이라도 싫것 쉬려고 하는데 [중장]
목동이 소와 양을 몰고 오면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으니 낮잠에 빠져 있는 나를 깨우는구나 [종장]

여름철 시골에세 한창 바쁜 농사일을 하는 중에서도 한가롭게 낮잠을 즐길 수 있는 평화로운 정경을 보여 주고 있다. 조선조 중세기의 선비들은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서 지낼때는 농부처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유로운 모습으로 보인다. 여러 전원 생활을 낭만적이고도 곰살궂게 표현하고 있다. 국지성 호우나 폭우가 없었던 태평스러운 시다.

김굉필 [단종 2년(1454) - 연산군 10년(1504)]
호: 한훤당, 사옹
시호: 문경공
김종직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성리학에 정통했고 효성이 지극하였음. 연산군 4년(1498년) 무오사화때 김종직의 일파로 몰려 희천에 유배됨. 연산국 10년 (1504년) 갑자사화 때에 사약을 받고 죽음. 그의 문하에서 조광조, 김안국 등의 학자가 나왔다. 그림에도 능했다.

<추기>
8월에는 환희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날도 8월 29일이다. 그래서 그날을 국치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광복절만 기릴 것이 아니라 국치일도 그에 못지 않고 기억하고 다시는 부끄럽고 아픈날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통칭 일제 강점기 36년이라고들 하지만 정확한 연수는 34년 11개월1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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