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07-24   Author : 이 충시
제3회 ‘독도 역사에 대한 에세이’ 심사를 마치고

newspaper update 6/13/2015




올해는 유엔이 지정한 세계 빛의 해입니다. 빛 하면 광학의 창시자 Ibn Alhazen이나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Marie Curie는 가난하여 고향친구들이 학자금을 조달하며 “천재를 살려 조국에 빛을 비추자!”하여 준 도움이 그의 졸업후 “내가 빛을 받아 소생 하였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빛을 던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Hellen Keller는 어떤 좌절한 청년에게 “당신의 얼굴을 태양쪽으로 향하시요 그러면 당신의 그림자를 보지 않을 것이요”라고 했다. 이는 태양과 등을 지면 그림자를 볼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어둠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 ! 어둠을 깨치고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독도사랑 Campaign을 지구평화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로 이끌어 주신 한국문화 역사 교육재단(KCHEFNE)과 한 분이라도 더 참석시키려는 Grapevine Times의 수고와 노력, 동북아역사재단(NAHF)의 믿음직한 후원 그리고 보스톤 총영사관의 특별상을 제의해 주신 엄성준 총영사님께 심심한 성원을 보냅니다.

이국생활의 시간을 쪼개면서 쉽지 않은 에세이에 응모해 주신 여러분과, 한가지 예로, 작년만 해도 Honorable수상을 받던 중고등부 학생이 이번에는 영예의 1등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발전으로 내년에는 더욱 큰 기대가 됩니다.
심사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드셨을 Essay를 평가해주신 심사위원분들, 김지연 박사, 김형범 선생, 서민원 이사, 한문수 교수, 함혜란 박사, 황우성 박사 그리고 Anne Sibley O’Brien 작가께 (가나다순 -존칭생략) 감사드립니다.

중고등부의 응모자들은 도덕적 사실주위 및 상대적 이론과 순수한 서술(敍述)로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는 방향이였고 그리고 대학 및 성인부에서는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면에서 최근대적 자료발굴과 국제적이면서 법적인 해결방안의 조언을 많이 연구 및 개발하셨음을 높이 평가 합니다. 그러나 연구하신 분야 전후를 보충하는 으미의 자료입니다.

다음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근거없이 근거를 만들어 시간이 갈수록 거짓의 증거를 창작하며 숨겨진 내용입니다. 일본은 2008년 및 2012년중 고등학교의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이를 교육시키고 있어 많은 응모자들에게 혼선을 주어, 숨은 독도의 사실들을 참아 알고도 이야기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로 과거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뒤에 숨은 잔악성을 사실 그대로 Campain할 의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로 Fig.4.의 명성황후는 1886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으로 외교 및 국방권한을 약탈하려 할 때 소련을 위시하여 세계만방에 알리려하자 고전분투한 가냘픈 왕비를 일본 본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하 xx까지 아는 비밀 밀사를 보내 조선의 폭도(暴徒)가 한 것 처럼 가장하고 Fig.5와 같이 1.2m나 되는 무사도의 칼(히젠도)로 잔인하게 죽여서, 불에—하고 연못에---했다 .


그때부터 독도를 중심으로 전투 기지화(戰場)하고 9년후에는 강제로 시내마현에 귀속시켰다.
( 이에 양심적인 일본인, 가이도시오씨가 몇 10년을 숨기던 범인과 증거물을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찾았다고 합니다) 침탈(侵奪)의 이유는 무인도이고 무소속인 이유였다. 배경을 알면 국제제판소에 갈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극우파 아베신조는 기존교과서의역사기록을 지우고 거짓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나, 경제의 힘에 눈이 가려서 외국인들은 잘 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독도관측 불가론의 허구성=울릉도에서 독도관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일본 외무성 관리이자 관변학자인 가와카미 겐조의 <다케시마의 역사지리학적 연구>(1966)에서 제시된다. 그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쪽에 증명하기 위해 한일회담이 진행되던 1960년대에 해군에서 바다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맨 눈으로 보이느냐를 결정하는데 사용하는 가시수평선공식(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을 쓰기도 했다.
독도의 해발고도를 157m, 눈 높이를 4m로 대입하면 시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30.305해리인데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가 49해리이므로, 울릉도에서는 독도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법학자이자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낸 이한기 박사에 의해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이 박사는 가와카미의 계산은 키 1.5m인 사람이 수평면에 서서 관찰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독도의 해발고도가 174m 이며,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가 47.4 해리이므로, 이 값을 이용할 경우 키가 1.7m 이상인 사람이 울릉도의 해발고도 100m 이상의 높이에서 독도를 쳐다 본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며 오류임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해발고도 167m 이상이면 독도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국제한국연구원이 촬영한 곳 가운데 하나인 안평전은 해발 380m였다



H: Height of the eye
(A:4m, B;985m)
(B)


독도는 단순한 작은 섬이 아닌 동해 한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한국인에게는 50년(1905-1945)간의 고통, 치욕(恥辱) 그리고 슬픔의 상징입니다. 아래에 몇가지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갈만한 예를 기술하고자 합니다. 지성인(知性人)인 연방하원 외교 위원장인 Ed Royce (R-CA), U.S. Congressman Mike Honda (D-CA), 전 관방장관 에다노 유키오(技野幸男), 와다 하루끼(和田春樹)교수 그리고 전임 수상인 토미치 무라야마(Tomiichi Murayama) 같은 분을 강력이 지지하고, 반대로 극우파 로 역사 왜곡과 뒤집기를 조석(朝夕) 으로 하며 호전성을 부활하려는 일본의 극우파 분들을 치유(治癒)하여 독도를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가꾸어 가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적인 해결책으로 관광시설을 증대하여 밤과 낮이없는 일상 생활의 지역으로 이식되게 하고 그곳에 생활터전이 될 수 있도록 암자나 수도사나 해양연구소, 해양박물관 등의 시설이 어떨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분들이 해변에 앉아 하늘 높이 날으는 갈매기를 벗삼는 평화의 낙원으로 만드는 Campain을 구상함은 어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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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Judging Commentary of the 3rd Dokdo History Essay Competition


This year is the International Year of Light as designated by the United Nations. Alhazen, an early Arabic “physicist,” made significant contributions to the principles of light and optics over a thousand years ago. Helen Keller who was blind and deaf famously said “keep your face to the sun and you will never see the shadows.” We should also try to stay away from the darkness and be shining individuals.

For the 3rd year, The Grapevine Times , the Korean Culture, History and Education Foundation (KCHEF) of New England ,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NAHF) have put in more time and effort campaigning to raise awareness of Dokdo as Korean Territory, such as the Dokdo History Essay Competition in Korean and in English.
We thank the judges for their hard work in reviewing a wide variety of essays. Each judge thoughtfully evaluated many great essays about Dokdo written by middle school students, high school students, college students, and adults.

The middle school essay entries were written with purely such solving the problem peacefully without arguments.such as last year Honorable is 1st place in this year. The high school, college and adult essay entries included international legal arguments and references to international meetings from recent history, to propose ideal solutions.
But some essay writers may not have known the full story behind their arguments aside from popular knowledge, so therefore next time we will provide more background information to the contestants such as The story of the Japanese army Unit 731 that ran live human experiments as Fig.6 , 7 & 8 and the story of comfort woman where 20,000 young women were forced into sexual slavery for the Japanese Army etc were not apologized for by current Japanese Prime Minister Abe , and such as The visible wrong old equation as Fig.1.,2,3 .




Dokdo is not only a small lonely island been floating in the middle of the East Sea for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history, but for 50 years during Occupation from 1905 to 1945, it was a symbol of many different conspiracies, humiliation, and grief for Koreans.

For example, the last Korean Empress Myungsung showed her ability in political affairs during the difficult time in the later part of the Joseon era or the Lee Dynasty of Korea. In 1895 she tried to form a pact with other countries to protect Korea from Japan, but she was killed, b----d, and b----d in the palace pond by a Japanese assassin sent by the Japanese P--me M----ter and E----or in order to take control of the East-Sea territory which is near Dokdo.
Immediately afterwards, Japan annexed Dokdo as its own territory part of the Shimane Prefecture and established a military based on the island. Then 9 years later, Japan stated they claimed the island due to terra nullius meaning it was previously unclaimed “no man’s land.” However, dozens of historical records and maps from both Korean and international sources like France as Liancourt, China, Portugal and England .

There is also on record of a Japanese researcher named Gai Dosio who spent 10 years to find the evidence of the assassin’s sword in a Japanese, Kushida Shrine, in1908. Now a day,Prime minister, Shinzō Abe(安倍晋三), removed all the true story from text book, and teaching and claiming that Korea has occupied by illegally. They should not have to prove that Dokdo is theirs in court. History proves it for them.

We must look for intellectual persons such as U.S. House Committee on Foreign Affairs Chairman Ed Royce (R-CA), U.S. Congressman Mike Honda (D-CA), Japanese Professor Wada Haruki, and ex-Prime Minister of Japan Tomiichi Murayama, who all support the Korean historical viewpoint and correct those who distort history. We hope to protect Dokdo from a wave of foreign claims with strength of a breakwater structure, so that some day we may all visit Dokdo and see white seagulls flying over the island as a symbol of freedom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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