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07-25   Author : 이 충시
한국문화 수천년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다. 10-15한국어 글꼴 및 자판기술의 관찰 (Scientifically Revealing Tho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X-V Survey of the Korean Fonts & Typing Technology )

newspaper update 6/19/2015



아시아의 동북부에 일만년 전부터 자리잡고 살면서 이루어 놓은 많은 유형 무형의문화재 중에서; 우리민족의 X-1.훈민정음,.2.그 분포 상항 3. 타문자와의 비교 4.비교 고찰. 5. 의문의 고대문자,6.뿌리의 고찰. 7-2, 한자와의 문법 비교. 7-3, 한자의 발전사 ,7-4 American Indian 언어,8.정음의 해례, 9. 정음의 발자취 10.한글의 세계화 ,11. 한글의 세계화의 미래. 12.남북의 한글의 현실. 13.남북한 한글의 변화, 14. 존대어법A/B,15.글꼴 및 타자기 및 그 숨겨진 비밀을 세계의 역사속에서 비교하며 풀어 보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많은 조언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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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 한글의 자랑은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만 가능했던 사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언어의 종말』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는 4,910개의 지역언어가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의 저자 Andrew는 가장 최근의 추정치에 따르면 21세기에만 이 많은 언어 중 약 2,500개가량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100년 동안 2,500개의 언어가 사라진다면 이는 평균 2주에 1개꼴의 언어가 이 세상에서 완전 소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현상에 대해 작가는 전 세계가 단일화, 통합화 되면서 소수 언어들이 자신들만의 힘을 잃고 세계 매스컴의 언어에 통합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대해 설명하며, 결국에는 소수 언어의 마지막 생존자가 자신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언어의 종말이라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Fig1.& 2.와 같이, 지난 제 15회 한국어능력시험은 1997년 제 1회 응시자 대비 40배 이상 증가한 인원이 시험에 응시했다고 하니, 한국어가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많은 노력의 결과로, 한국어 사용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어의 보급은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격인 미국 대학입학수능시험(SAT) 시험영역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데요. 한국어가 1997년 전 세계 언어 중 9번째로 미국 대학입학수능시험(SAT) 시험과목으로 채택된 이후, 외국어 영역으로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 수가 계속 증가해 2007년에는 SAT시험에서 한국어를 선택한 학생 수는 모두 4176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SAT 외국어 영역의 9개의 과목 중 응시생 규모 4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세계 속에 우뚝 서 있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국어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10-15. 한국어의 글꼴 및 타자술의 관찰(Survey of the Korean Fonts & Typing )




한글 글꼴 및 풀어쓰기가 발전해 온 길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한글 글꼴은 목판 인쇄에 쓰이던 고어체에서 서서히 실용적인 모양으로 변천하였다.. 그러나 약 500여 년간에 걸친 한글 글꼴의 변화를 오늘날 남은 문헌에서 살펴보면 그렇게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주로 양반층이 되어 있었고 붓으로 글씨를 썼기 때문이다. 주로 쓰인 한글 글꼴은 서예에서 일컫는 몇몇 서체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Fig.4.와 같이, 근대에 와서 한글의 풀어쓰기는 주시경의 두 제자 김두봉, 최현배의 안으로 풀어쓰기 중심으로 1914년 4월 13일 주시경 선생의 “말의 소리” 그 뒤 제자 김두봉은 “깁더 조선말본”을 1918년 4월 13일에 인쇄체와 필기체의 풀어쓰기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보였고, 22년에는 풀어쓰기 흘림체가 연구되었다

서체는 글씨의 모양에 따른 여러 가지 글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한자에 행서체니 초서체니 하는 글자꼴을 구분하여 말하듯이 한글에도 여러 가지 글씨 꼴이 있다. 광복 후 45년에는 최현배 선생을 중심으로한 최현배 선생의 저서 “가로쓰기독본”이 발간됐고, 연세춘추 대학신문에도 풀어쓰기를 보급하였다. 일본에서는 해방 직후 체신부에서 서울 인천간에 텔레타이프에 풀어쓰기 시험 완료도 하였다.

특히 자판 배열에 있어서는 닿소리 글자는 왼편, 홀소리 글자는 오른편으로 나눠서 드보락식을 적용하여 현재의 모아쓰기도 풀어쓰기 두벌식으로 통일하게 된 효시가 되었다. 그후 풀어쓰기 텔레타이프는 체신부, 육군, 철도청에서 통일된 배역을 사용하게 되었고, 1958년 이후 제일은행, 조흥은행에는 6단위 신꼬 Teletype에 한글 풀어쓰기 한영 겸용으로 보급되었고, 상업은행, 체신부 Telex 등에는 한글 풀어쓰기 5단위 한영 겸용으로 사용되었었다.




10-15-1. 한글의 글꼴 (The Fonts of Hangul)


한글의 글꼴이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 ,Fig.5.와 같이, 반포체, 궁서체, 사진식자기에 쓰여진 서체 및 Computer에서 쓰여진 서체로 크게 나누어 보겠습니다

*(A).궁서체:궁서체는 반포체가 가진 단점인 “딱딱한 모양”을 벗어던지기 위해 고안된 한글 붓글씨체의 대표적인 글꼴이다. 궁체(宮體)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궁중에서 쓰이고 발전한 서체이며 그 특징은 무엇보다도 부드럽게 흘러가는 모양에 있다. 반흘림, 흘림, 정자의 3가지 종류가 있다.

*(B).사진 식자로 만든 한글 글꼴:조선 초기와 조선 후기에 한글이 창제된 이후, 석보상절체, 동국정운체, 언해체 등 여러 가지 한글 글씨체 등이 등장했으나, 한글이 처음으로 서양식 활자체로 쓰이게 된 것은 1880년대 이후에 최지혁의 글씨를 표본으로 하여 서양 선교사들이 번역한 성경을 출판된 것 등이다.

*(C).고딕체:이후 독립신문처럼 순 한글판 신문이 많이 나오게 되면서 한성체와 독본체, 말의 소리 활자체가 등장했고 1920년대에는 고딕체와 비슷한 서체도 등장했다. 1930년대에는 이원모체와 박경서체 등 여러 가지 활자체들이 많이 생겨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쓰이게 되었으며 8•15 해방 후에는 장식 서체들이 만들어져 앞에 나온 서체와 함께 많이 쓰이게 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동아출판사체, 국정교과서체 등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이어진다. 그 후 사진 식자기(寫眞 植字機)가 유입하고 개발하게 되면서 디나루체, 헤드라인체 등 제목용 글꼴이 개발하게 되었다.

사신식자기로 이용하여 만들어진 글꼴종류는 지금보다 많지 않았지만 당시로는 매우 다양한 서체들이 많았다. 명조체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하여, 고딕체, 그래픽체. 해서체, 공작체 등 8종이 있었으며 명조체와 고딕체는 견종, 태종, 중종, 세종별로 굵기가 각각 다른 종으로 나누었다.
고딕체와 명조체 족은 본문과 제목글에 많이 사용했다. 디나루체와 그래픽체는 명조체와 고딕체와는 다르게,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큰 제목이나 부제목글에 사용하였으며, 인기도 많았다. 그 밖에 궁서체, 해서체, 공작체 등이 있었다.

*(D).사진식자기로 만들어진 글꼴: 신명조체, 그래픽체,고딕체, 해서체, 궁서체, 공작체
신그래픽체, 견명조체, 견고딕체, 헤드라인체

*(E).컴퓨터에서 사용되는 한글글꼴: 명조체, 고딕체, 샘물체, 필기체, 신명조체, 신문명조체, 공작체, 그래픽체
견명조, 중고딕, 일부 한양서체(HY신명조 등)

*(F).마이크로소프트는 다음 글꼴을 지원하고 있다:
굴림, 굴림체, 돋움, 돋움체, 바탕, 바탕체, 궁서, 궁서체
새굴림, 맑은 고딕

*(E).맥 오에스 텐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꼴을 지원하고 있다: 애플명조, 애플고딕, 궁서
나눔글꼴

*(G).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컴퓨터 글꼴은 조선글 콤퓨터서체프로그람 “삼천리”와 평양정보쎈터 조선글 콤퓨터서체프로그람”글서체 50종”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지난 2001년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높이 평가한 서체들을 골라 “삼천리”를 개발하였으며, 그 후 평양정보쎈터에서”글서체 50종”을 개발하였다.
이외에도 북조선의 컴퓨터 글꼴은 500여 종이 된다. [출처 필요] 전자 출판에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청봉체와 광명체, 그리고 천리마체, 조선의 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동신문》의 옥류체가 그 중 일부이다.
이 서체들은 한글,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4개 언어에 서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윈도 98, 2000, XP와 같은 운영 체제, 워드 프로세서 “창덕”과 “내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조선콤퓨터쎈터와 평양정보쎈터에서는 자체로 개발한 웹 사이트를 통하여 다양한 글꼴들을 판매하고 있다.
아래에 나와 있는 서체들은 조선콤퓨터쎈터에서 개발된 것과 평양정보센터에서 개발된 것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마련한 것이다.
천리마체, 청봉체, 새날체, 붓글체, 광명체, 고전체, 립체체, 필기체, 동심체, 율동체, 장식체


10-15-2. 한글 자판의 발전가(The History of Hangul Typing)



(A) 한글 자판 개발,의 어려움
한글은 다른 문자 체계와 달리 ‘초성-중성-종성’ 각각의 음소를 하나의 음절로 모아 써, 시각적으로 음절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 문자이다. 이는 한글만의 고유한 특징이며 한글의 문자 체계가 간단하고 과학적이라 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이다. 그러나 한글 기계화 측면에서는 이토록 과학적인 모아쓰기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첫째, 한글 타자기는 한 음절의 글자 안에 종성(받침)까지 모아쓰기 때문에 알파벳 타자기처럼 한 글자를 찍을 때마다 종이가 움직이면 종성을 제자리에 찍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한글 타자기는 알파벳 타자기와 달리, 글쇠 일부는 글자가 찍혀도 종이가 움직이지 않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아쓰기에서 ‘ㄱ’의 모양 변화. 각각의 경우에 따라 낱글자 ‘ㄱ’의 위치와 크기가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B) 1914: 1914년 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미국교포 이원익 선생의 것이다. 미국에서 쓰이던 로마자 타자기의 활자를 한글로 바꾸어 만든 것으로, 세로모음과 함께 쓰는 초성, 가로모음과 함께 쓰는 초성, 받침 없이 쓰는 중성, 받침과 함께 쓰는 중성, 종성 이렇게 다섯벌식을 갖춘 세로쓰기 타자기였다. 또한 글자를 왼쪽으로 드러누운 꼴로 찍어, 나중에 인쇄한 종이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면 세로로 쓰인 문서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글쇠는 안움직글쇠여서 한 음절을 완성하고 사이띄개를 눌러 종이를 한 칸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C). 1929년 무렵에는 송기주(宋基柱)가 언더우드 포터블 타자기를 개조하여 네벌식(옆자음, 윗자음 겸 받침, 복자음과 쓰이는 작은 자음, 모음) 세로쓰기 타자기를 개발하였다. 송기주는 192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주립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지도 제작 및 도안 일을 하던 중 이 타자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 활동하던 김준성 목사가 1946년 영문 타자기를 개조하여 한글 타자기를 만들었다. 이 타자기는 풀어쓰기 타자기로서, ‘한글날’을 타자기로 치면 ‘하ㄴ그ㄹ나ㄹ’과 같이 표기되는 것이었다.

(C) 공병우(公炳禹):Fig.6.에서와 같이,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안과병원인 ‘공안과’를 세운 안과의사이다. 1938년, 안국동에 ‘공안과’를 열었는데, 우연히 환자로 안과를 찾은 국어학자 이극로(李克魯)를 만나 한글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광복 후 일본글로 되어 있던 시력검사표를 한글로 고쳐 만들고, [소안과학]이라는 책을 한글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한글 타자기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글쇠의 벌수가 많았던 기존의 세로쓰는 타자기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 한글 타자기를 만들기로 하였다.
1948년 2월, 공병우는 쌍초점 방식(초성과 중성은 움직글쇠, 종성은 안움직글쇠로 배당하고, 타이프가이드의 왼쪽에 또 하나의 초점을 만들어 받침의 활자를 왼쪽으로 유도함)의 세벌식 타자기를 만들어 특허출원을 하고, 1949년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의 시제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 한글전용정책 실시 전이었기 때문에 한자와 함께 작성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고, 타자의 속도는 빨랐지만 글자꼴이 고르지 않아 문서의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타자기 최대 수요자인 행정기관에서는 이 세벌식 타자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또한 시제품 완성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Fig.6.은 필자가 현재 보관하고 있는 기념의 공병우 박사의 타자기이며, 필자가 1980년경 우연히 안국동의 공안과 병원을 갔다가 그를 만났는데 아주 소탈하신 분으로, 눈검사도 그가 고안한 한글 도표로 하며 아주 인상적이였다. 감탄한 일은 그의 유언이 자기의 모든 장기(腸器)는 전부 기증하고 시체는 대학 해부학과에서 쓰도록 제공 한다고 하였다 한다

(D) 전쟁의 발발로 속도가 있는 공병우 타자기가 크게 쓰였으나 글자꼴이 고르지 않고 한자와 같이 쓸 수 없어 글씨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교부 및 원호처에서는 김동훈 타자기를 선호했다. 그러나 자판이 상이하여 1957년 문교부의 통일타자기안으로
1983년에는 인쇄전신기용 두벌식 타자기를 완성했다. 이후 Computer & World process 및 Window 95이후 모든 기기가, 기계화 되어 100년을 공헌해온 2벌식 3벌식의 타자기 의미가 없어졌다


결론: 이 연구는 이상적인 한글서체의 구조를 찾기 위한 배경 이론의 정립을 위한 고찰이다. 한글은 훈민정음의 창제 이래 음절단위의 모아쓰기형식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1908년 주시경의 풀어쓰기에 대한 제안이후 몇몇 학자들이 주시경의 제안을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한글의 풀어쓰기를 실시할 경우 많은 이점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풀어쓰기의 한글은 쓰기나 읽기에 쉽고, 출판 산업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쇄와 관련된 문제는 컴퓨터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되었고, 쓰기나 읽기의 불편함은 풀어쓰기와는 관계없는 주장이다.
물론 독서의 수월성에 관한 문제 중 풀어쓰기와 관련된 부분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다고 한다. 오히려 한글의 풀어쓰기를 실시할 경우 읽기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표현가능한 음절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문자로서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며, 한글 타자기의 100년후인 지금엔 풀어쓰기의 과학성이, 자동화에 흡수됬고 모든 언어를 코드로 다루는 유니코드(Unicode)라는 규격의 보급은 한글과 Computer와 Internet의 친화성을 가속화 시켰다고 사료되며 오늘의 한글이 있기 까지에 숨겨진 헌신적인 분들의 봉사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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