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08-22   Author : 이 충시
4. 현 우주발사체의 개발과 그 역사의 관찰 (The Survey of Developing and History for the Space Launch Vehicle/SLV )

newspaper update 5/27/2016



지난 1편에서는 한국형 우주선의 달 탐사는 언제쯤 가능한가, 2편 및 3편에서는 우주발사체의 개발을 관찰했으니, 그 마지막으로 그 역사의 뿌리를 관찰 하고자 합니다
필자가 공군에 근무하던 1960년대, 어느날 아침의 큰 화제(話題)는 한국형 Rocket을 성공리에 발사 되었다는 화제(話題)였던 기억이 납니다. 본문에서는 세계의 우주개발사 뿐 아니라, 우리 한국의 우주개발의 발자취를 살펴 앞으로의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수 있도록 관찰해 보고자 합니다


4-1. 초창기의 관찰(初創基 觀察/The Survey of the Beginning Time )


1) 압력솥(Hero Engine)BC 250:
BC 250년경 Fig.1.과 같은 용기속에 압력이 높은 기체를 가득 넣고 그 기체를 어느 한쪽방향으로 방출하면 움직일 수 있는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은 옛날 부터 알려져있다 .


2) 무경총요(武經總要 : AD 1040) :
다음으로 1040년경 저술되었다고 하는 중국의 ‘무경총요’에는 오늘날 알려진 흑색화약이라고 하는 초보적인 추진제의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을 에너지원(源)으로 해서 대형의 화살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는 흑색화약을 만드는데, 굵은 대나무 통에 숯•초석(硝石)•황등을 혼합해서 이것을 채워넣고 화살촉이 붙은 가느다란 대나무에 묶어, 처음에는 활로, 후에는 목재(木製)의 발사대에서 발사하여 무기로 사용하였다. 이것을 화전(火箭)이라 하였는데, 중국은 1232년에 성(城)을 포위한 몽골군에게 화전을 사용해서 반격했다고 한다. 원군(元軍)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도 이 화전을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의 화전제조 기술은 인도나 아라비아를 거쳐 1332년 경에는 유럽에 전해졌고,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쏘아올리는 불꽃을 뜻하는 로케타(Rocchetta)라 불리어 오늘날의 로켓(Rocket)의 어원이 되었다.

3) 화포(火砲)AD 1241-1600; 한국의 로켓트 제1호롤 불리어지는 화약을 화살의 뒷면에 장착하였으며 목적은 다량의 화살이 상당히 먼거리 아래의 Fig.3.와 같이 1241년 경 고려 23대 고종왕 때, 몽고군을 맞이해서 그리고 1600년경 이조 14대 선조왕 때 왜군과 싸울 때 쓰여졌다고 전해지며 화차(火車)라 불리어졌으며 임진왜란을 맞아 행주산성에서 일본의 대군을 상대하여 크게 대승하였으며 외국에는 화포 또는 신기전(神機箭)으로 거북선과 함께 영국의 잡지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4) 로캐타/Rocchetta(AD1332); 유럽에 전해져서 이태리에서 로캐타(Rocchetta)라 불리어 지면서 오늘날의 로캣트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5) AD 1800-1926: 영국에서는 18세기 보물의 나라라 일컫던 인도를 침공했을 때 인도군의 로켓 공격으로 봉변을 당하고, 그 후부터 로켓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로켓에 의한 추진은 특히 비행 중의 안정제어가 곤란하여, 실용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가운데 16세기경부터 급속도로 발달한 총포기술(銃砲技術)에 뒤져서 연구의 주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9세기 초에 영국의 W.콩그리브는 로켓 추진에 의해 약 3km를 비행시키는데 성공하여 무기로서 이용을 연구하였으나 그 성과는 대포포탄(大砲砲彈)의 비행거리를 연장시키는 방향에 전용되었다고 한다.

6) AD 1898; 러시아의 K.E. Tsiolkovsky가 발표한 <로켓에 의한 우주공간의탐구 >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액체추진제를 사용함으로써 엔진의 배기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고, 우주공간에서의 비행실현에 대해 상세한 연구성과를 설명하였다

7) Goddard’s 1926 Rocket;
치올코프스키의 이론적인 추구에 대해 미국의 R.H. Goddard는 이론뿐만 아니고 실제로 로켓을 제작하여 비행시킴으로써 이론의 구체적인 증명을 구하였다. 그는 수 년간의 연구성과를 발판으로 삼아 1916년에는 우선 고체추진제를 사용한 실험기(實驗機)를 제작하여 비행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엔진 속의 고압에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꺼운 재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체(機體)가 너무 무거워서 생각했던 것과 같은 성능을 내지 못하였다.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고더드의 연구는 미국 육군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계속되었다. 종전 후에는 원조가 중단된 가운데서도 추진제를 액체로 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변경해서 개발을 계속하였다.


마침내 시작(試作) 제1호기가 1923년 가을에 완성되었다. 이것은 추진제로 액체산소 및 가솔린을 사용하고, 이것들에게 펌프 동력으로 압력을 걸어 엔진에 보내는 기본적으로는 오늘날 실용화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1926년 3월 16일 매사추세츠주(州) 오번에서 사상 최초로 액체추진제를 사용한 로켓 발사가 고더드에 의해 실시되었다. 엔진은 2.5초 동안 작동하고, 로켓은 고도 56m로 상승하여 시속 97km를 기록하였다.

2년 반 동안 지상에서 시운전을 하여 그 기능을 상세히 점검,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리하여 1926년 3월 16일 매사추세츠주(州) 오번에서 사상 최초로 액체추진제를 사용한 로켓 발사가 고더드에 의해 실시되었다. 엔진은 2.5초 동안 작동하고, 로켓은 고도 56m로 상승하여 시속 97km를 기록하였다.


8). German V2 Rocket; 1943년에 V-2호(정식으로는 A-4형) 탄도 미사일 등이 생산되게 되었다
V-2호는 독일이 낳은 획기적인 근대 로켓이며 그 후 미국과 소련의 우주 미사일이나 군사 미사일의 원형이 되었다. 이것은 액체산소와 알코올을 터빈펌프로 연소실로 보내는 방식의 액체 로켓이며, 날개와 노즐에 단 키(벤), 자이로 및 타이머(Pro-programmer)를 포함시킨 유도제어 장치로 자동조정을 하였다. 기체구조는 공력가열(空力加熱)을 고려한 연강판제이다. 이동 가능한 발사대로부터 수직으로 발사하여 1t의 폭약을 탄두에 싣고 목표를 향하여 자동으로 키를 조정하면서 규정속도에 도달하면 엔진을 끄고서 약 300km를 날 수 있었다. 약 4,000기가 제조되었고, 영국 및 유럽 대륙 서해안에 발사되어 연합군이나 시민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9) Apollo Rocket(1960-1961);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가 “1960년대에 인간을 달로 보내고 또한 안전하게 귀환시키겠다”고 발표하였는데, 그 아폴로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계획한 로켓이 새턴 5형이다. 이것은 3단식 액체 엔진으로 승무원 3명으로 2인승의 착륙선을 달에 연착륙시켜서 탐사를 마친 뒤, 사령선(司令船)으로 지구에 귀환하는 것인데 계획대로 1969년 6월에 최초의 달착륙에 성공하였다. 이것은 99.9999%의 신뢰성을 가진 화공품(火工品)과 탑재기기, 기능적인 착륙선, 고도의 일렉트로닉스를 구사한 소형 컴퓨터를 갖춘 계기부, 조정부와 3명의 승무원을 안전하게 확보하고 재돌입의 공력가열에 견디는 사령선 등, 그 때까지의 최고기술을 집결함과 더불어 시스템공학을 전면적으로 채택한 일대사업이었다. 새턴 5호 시리즈는 개발 도중에 1호기•2호기의 부분적 실패와 13호기의 발사가 중지된 것 이외는 모두 달탐사에 성공하였다.

4-2. 한국도 우주개발기술의 뿌리가 있었는가!

1) 화포(火砲/神機箭)AD 1241-1500; 한극의 로켓트 제1호롤 불리어지는 화약을 화살의 뒷면에 장착하엿으며 목적은 다량의 화살이 상당히 먼거리를 갈수 있어 12세기 당시에 몽고군을 대항하는 공포의 무기로 Fig.6..와 같이 Torpedo와 함께 사용했으며 임진왜란때의 행주산성대첩에서 일본군을 대파했던 화포는 한국의 로캣1호라 볼 수 있다.

2) 이조 세종대왕의; 화전(火箭), 화포(火砲)의개량 및 혼천의(渾天儀) 및 측우기를 발명했다(1430)

3) 한국의 로캣 시험발사(1950-1959);
1959년 3월 9일 발행된 미국의 로켓 전문지(missiles and rockets)의 기사가 실려있었다. ‘급격하게 늘고 있는 세계의 미사일 발사장’이라는 기사에 우리나라의 첫 로켓 발사 소식과 함께 인천을 ‘세계 미사일/우주 로켓 시험 발사장’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당시 시험 발사가 이뤄진 곳은 미국과 유럽, 구소련, 일본 정도였다. 우주 발사장이라면 전남 고흥에 있는 나로 우주센터만 떠올랐다.
영상에는 1959년 인천에서 실시된 로켓 발사 장면이 남아있었다. 1958년 10월 이뤄진 로켓 7기의 비공개 시험 발사 1년 뒤인 1959년 7월에는 1,2,3단 로켓 5기를 공개 발사했고 이 뉴스가 전파를 탔다.


이승만 대통령과 유엔 사령관을 비롯해 시민 2만 여명이 몰려든 가운데 발사는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566호’라는 이름의 3단 로켓 1기는 단이 분리되는 모습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었고 101초간 비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50년대 태동한 로켓 개발 붐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1960년 4.19 혁명을 시작으로 5.16 쿠데타 등 정치적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국가 주도의 연구는 사그라들게 된다. 인하공대 학생들로 구성된 로켓반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11기의 로켓을 개발해 발사 시험을 진행했다. 이전 발사에서 미군의 로켓포에서 분리한, 고체 연료를 사용한 것과 달리 인하대 로켓반은 직접 추진제(연료와 산화제 혼합)를 만들어 사용했다. Fig.8.은 인천 한국로켓시험장이고 Fig.9.는 그 당시의 일본로켓 시험견본으로 많이 앞서 가던 한국이, 15년 후인 1970년대에는 꾸준한 개발국인 일본이 자력으로 쏘아올린 세계 4번째의 나라가 되었다.


4) 한국최초의 지대지 미사일’백곰’(Korean First Surface to Surface Missile/地對地)개발
“1976년 5월 미 중앙정보국(CIA)은 백곰의 설계도 초안이 거의 완성됐다는 보고서를 국무부에 올렸다”며, “이후 주한미군 사령관과 주한 미국대사, 미 국방부 안보담당 차관보가 ADD를 찾아와 미사일 개발 중단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미 안보담당 차관보가 우리 정부에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뒤에는 핵을 개발할 것이냐’며 노골적으로 거칠게 항의했다”고 하며, “미국은 미사일 사거리를 180km로 제한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1978년 9월 백곰의 공개 발사가 이뤄진 뒤 존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은 합동참모본부 임동원 대령의 안내로 ADD를 방문해 5시간 동안 설명을 들었다”면서 “카터 행정부가 파견한 7명의 사찰단도 ADD를 찾아 어느 나라에서 들여온 기술인지 캐물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백곰의 성능을 개량할 때는 영국 페란티 사에서 관성항법장치를 수입했는데 이를 접한 미국 국무부서는 난리가 났다”며 “미 국무부는 즉각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고 전했다.


당시 한국에 대한 미사일 사거리 180km 제한 약속에 위배가 3된다며, 현무 미사일 부품 등 모든 방산 부품의 한국 수출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에 1차 한미 미사일 지침 협상이 시작됐다고 한다.

5) 2016은 한국 독자 우주발사체의 준비완료에 의해 75톤급 액체연료 엔진의 완성및 시험 완료의 해로 본다 .
6) 2019-2020 발사예정이며
7) 2025년을 달 착륙선 발사예정 이라고 합니다
*From:http://bemilchosun.com & direct indirect source.

결론: 이글을 쓰게된 동기는 급박했던 한반도의 상항에서 하루가 다르게 개발 출현되던 새로운 우주개발체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될가 해서였습니다만 관찰도중 원통스러운 6.25라는 형제의 싸움과 4.19 그리고 5.16의을 거치면서 선친들이 이루어놓은 값진 그리고 세계에 자랑스럽던 선진과학의 기반을 되돌리기 어려운 현실이 되어버린 오늘을 돌아보기위한 기회가 됐다고 사료 됨니다. 선친들의 과학 수준은 최소한 200-700년이 앞서 갔었으나 불행이 이웃나라에 뒤처진 한국 우주개발의 현실을 만회(挽回) 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들이 있기에 계획이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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