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08-38   Author : 이 충시
11-4. 한민족의 무형유산 아리랑 의지역별 관찰 (Scientifically Revealing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XI-IV The Regional Survey of Arirang)

newspaper update 9/23/2016



서두 ;
한민족(韓民族)의 문화제인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전민요(口傳民謠/Oral folk song))이다 ,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전통낱말 순위중, 3번째 순위로 조사되었고, 2012년 12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록되었습니다. 아리랑은 한민족 뿐이 아닌 세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11-1,편에서는 그 유래를, 11-2편에서는 시대성, 11-3편에서는 어원적(語源的/Etymological )인 관찰 그리고 11-4 본편에서는 지역별(地域別/Regional)아리랑의 비교관찰을 함께 하고자합니다
“Arirang” (Korean: 아리랑) is a Korean folk song, often considered as the unofficial national anthem of Korea. In December 2012, South Korea’s submission of the song was inscribed on the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program by UNESCO.


11-4. 아리랑의 지역성 관찰(아리랑의 地域性 觀察 /The Regional Survey of Arirang).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가고 없어도 산천(山川) 은 변함이 없으며 한민족(韓民族)의 얼은 아리랑이 존재 하는 한 영원이 존재하리라.

앞장에서 서술한 불확실한 아리랑의 유래는 기록이 불분명할 뿐 그중에 속해있을 것임은 분명하며 Fig.1.에서의 우편 그림과 같이 AD.1,400( 朝鮮의 初期)에서 부터 구전에서 구전으로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겠으며, 아리랑고개는 실재 동대문 바같쪽에 있었던 사실이며 정선 (旌善)아리랑은 실제 강원도(江原道) ,정선(旌善), 지금의 남면, 거칠현동(居七賢洞)이 있었고 현금에도 존재하는 경복궁(景福宮) 증축(增築)시에 벌목해 뗏목으로 강을타고 운송해 왔던 곳이라고 합니다.
Arirang Pass (아리랑 고개) is an imaginary rendezvous of lovers in the land of dreams, although there is a real mountain pass, called “Arirang Gogae,” outside the Small East Gate of Seoul. The heroine of the story from which the Arirang Song originated was a fair maid of Jeongseon Arirang, (정선 아리랑) from Jeongseon County in Gangwon Province

4-1.아리랑의 탐방(探訪/Individual Arirang):

지역별: 지역별로 구분하되 국내와 국외 그리고 한 단체가 시대성과 성격에 합당한 이름을 붙여서 구분하면 360여류로 나누인다고 알려져있다

*한국내에서는 크게 분류해서 3대 아리랑이라 하여, 경기(京畿) 아리랑, 진도(珍島) 아리랑 그리고 밀양(密陽)아리랑으로 분류한다. 경기 아리랑에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및 충청도를 포함시키고, 이북은 북한 아리랑이라 하겠다. 진도 아리랑은 호남이고, 밀양 아리랑은 경상도를 포함시키며, 경기 아리랑에는 대표적인 강원도의 정선과 본조( 本調) 아리랑으로 분류하겠습니다.

*잘 알려진 3대 아리랑의 진도 아리랑에서는 현재 미국의 한국학 교재에도 들어있는 서편제(西便制)영화가 유명하고, 대표 아리랑은 정선 아리랑이라 알려져 있다. 북한의 아리랑은 연례행사의 대 축재중의 하나이며 배합관현악을 위해 작곡된 최성환의 아리랑은 북한의 대표로 꼽힌다고 한다

국외에서 알려진 아리랑은;
*연변 아리랑, 사할린 아리랑, 독도 아리랑, 만주 아리랑 그리고 오끼나와 아리랑 등이 있습니다

단체별 아리랑은;
*독립군 아리랑, 광복군 아리랑, 해방기 아리랑 그리고 조국을 빼앗기고 소련으로 떠난 알타아타시 아리랑 등이다
*별도로 통일을 연원하는 통일 아리랑, 진도 아리랑을 영화화한 유명한 서편재(西便制)등이다.

4-2 경기 아리랑의 대표, 아리랑인 정선아리랑(旌善 我離娘/Jeongseon Arirang)



Fig.1.은 ,경기 아리랑의 대표로 불리우는 정선 아리랑의 고장이며 Fig.2.는 양금석 가수의 정선 아리랑 열장 무대입니다. 아래와 같이 아리랑가사와 그 해설을 관찰 하고자 합니다

1절: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2]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난다.[3][4]
2절:청천(靑天)하늘엔 별도 많고,우리네 가슴엔 꿈도 많다[5]
3절: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 섣달에도 꽃만 핀다

1. 이동 ↑ 2절의 “나”는 3절의 “나를” 과 대응하기 때문에 흔히 생략된다. 2절의 “나”가 “우리”로 바뀌기도 한다.
2. 이동 ↑ 10 리는 일반적으로 약 4 km.
3. 이동 ↑ “발병난다”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닌 고개를 넘은 후 발에 물집이 잡히거나 상처가 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이동 ↑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는 2절 가사에서 “별도 많고”는 “잔별도 많고”, 이동 ↑ “아라리요” 는
뜻이 없는 노래의 자연스러운개를 위한가사입니다.
5. ”꿈도 많다”는 “희망도 많다”로 불리기도 한다

*경기 아리랑의 도표

4-3. 정선 아리랑의 기록과 전설(旌善 我離娘記錄 &傳說/Jeongseon Arirang The Record & Legend)

*이곳은 남한강 천리길 물길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 시작지점으로, 각지에서 모여든 뗏꾼들의 아라리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특히, 뗏목과 행상을 위하여 객지로 떠난 님을 애닯게 기다리는 마음과 장마로 인하여 강물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애절한 남녀의 한스러운 마음을 적어 읊은 것이 지금의 정선아리랑 가사로 널리 불리워지고 있으며 이러한 지명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강건너에 아우라지비와 처녀상과 정자(여송정)를 건립하여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임을 전해 오고 있다.

*아우라지 강을 사이에 두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유천리 총각이 사랑을 했다. 그들은 남몰래 만나 싸리골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뱃사공 지서방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필이면 그들이 싸리골에서 만나기로 약조한 날 밤 배도 뜰 수 없을 만큼 억수장마가 들었다. 두 처녀 총각은 강을 사이에 두고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이 사정을 아는 지서방도 그저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장마가 그렇게도 오래갔던지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었던지, 끝내 둘은 맺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초성 좋은 지서방은 뱃일을 하면서 그들의 사연을 노래했던 것이다. 지금도 정선에는 20여 리 떨어진 여랑리의 아우라지 강에 가면 비록 삿대 없는 배이지만 쇠줄을 당겨 건너는 배가 있다. 또한 강 기정선아리랑 비문이 있는 기슭에는 바람에 날리는 치마자락을 여미고 강물을 그윽히 바라보는 ’아우라지처녀’의 동상이 서 있기도 하다

*정선(旌善)아리랑은 ‘아라리’라는 이름으로 정선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 충북지역, 경기도 동부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구비전승 되어온 민요다. 정선아리랑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조선시대 초기(朝鮮 初期)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선아리랑에는 시대 정신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러면서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시집살이의 서러움, 고부간의 갈등, 산골마을의 가난한 삶, 벌목과 떼목일의 고단함과 유희 등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Fig.4.Jeongseon Arirang Legend Book
.정선아리랑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강원도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이 되었고, 체계적인 전승과 보전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맺는말
‘아리랑’이란 매혹적인 정적인 용어 그 자체만으로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하듯이 다양한 주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의 관찰로는 그 영향력이 한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에서 부터 가림다 문자속, 삼국유사, 삼국사기 , 조선시대의 농부가에서 뿌리가 관찰됐으나, 기록과 현지관찰이 가능한 곳은 강원도 정선에서 경복궁 복원사업때의 목재운반, 무리한 노역으로 인한 이별의 애수(哀愁)가 잠긴 노래가, 1872년경경복궁 재건에 부역(扶役)되어 전국에서, 모여든 부역자들의 한마당이, 귀향후에 각지방에 맞는 가사를 넣고 부르게 되었을 확율이 크며, 분류는 지역별로, 시대별로 그리고 단체별로 분류되었으며, 그 근원인 정선아리랑이 대표곡으로 승화(昇華) 되지 않았나 사료되었습니다

*다음달에는 지역 아리랑의 탐방 및 아리랑의 현대화 가곡의 연구현항 등을 소개 및 관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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