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09-15   Author : 이 충시
11-4, 한민족의 무형유산 아리랑 의 지역별관찰 미국 종편 (8) 아리랑의 재발견 (Scientifically Revealing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XI-V The Regional Last Survey of Arirang in USA Xlll-Rediscovering of Arirang)

newspaper update 4/14/2017



아시아의 동북부에 오랜세월 자리잡고 살면서 이루어 놓은 많은 유형 무형의문화재 중에서 우리민족의 3번째 자랑인 아리랑과 연계된 숨겨진 아리랑을 재발견(再發見) 하여 보고자 합니다
미국편의 종편입니다 . 독자 여러분께서는 많은 조언을 주시기 바랍니다


서두 ;
한민족(韓民族)의 문화재인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전민요(口傳民謠/Oral folk song))이다 ,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전통낱말 순위중, 3번째 순위로 조사 되었고, 2012년 12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록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한민족 뿐이 아닌 세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있습다. 11-1,편에서는 그유래를 , 2편,시대성 , 3편, 어원적(語源的/Etymological ) 4,지역별(地域別/Regional) 에서, 4-1 정선 아리랑, 4-2 진도 아리랑, 4-3밀양아리랑 그리고 4-4 김산, 4-5.미국분인 헐버트 박사와 아리랑 연계 그리고,4-6 Hague밀사, 4-7미국편, 4-8미국의종편으로, 아리랑의 재 발견편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11-4. 아리랑의 지역성 관찰-미국종편(我離娘 地域性 美國觀察 終篇 /The Regional Last Survey of Arirang-in USA ).

4-8-1. 미국땅에서의 아리랑의 재발견(美國 我離娘 再發見/Rediscovery of Arirang in USA)

Fig.1.에서 처럼, 미국에서의 아리랑은 하와이 첫이민자들로 부터, 한국전 참전용사를 통해서 였으며, 근래 보도되고 있는 뉴쓰에 의하면 지금, 미국의 경음악계엔 난데없이 <아리랑>이라는 애뜻한 동양정서의 신곡이, 거리에서 그리고 사교실에서, 급작스럽게 유행되고 있어 이노래의 다정다한(多情多恨)함이 보도되고 있는 뉴쓰에 의하면 ‘미국의 경음악계엔 난데없이 <아리랑>이라는 애뜻한 동양정서의 신곡이 급작스럽게 유행되고 있다’고 보도되며, 아리랑의 멜로디는 모든 사람의 귀를 기울이게 하여, 드디어는 너도나도 즐겨 부르게 될 지경이라고 한다. 더욱이 미국에서 유명한 흑인 째즈 밴드의 뉴욕시 연주엔, 이 노래가 가장 인기를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리랑>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아리랑>이 틀림없는데, 바다 건너 몇 만리 미 본토에까지 그 같이 유행되어진 이면엔 그동안 한국전쟁에 종사후 제대 귀국한 병사들이 돌아가서 부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오늘날 미 문화교류의 선봉에 있으며 세계 각지역으로 퍼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8-2, 미국의 아리랑 전파자 Peter Seeger등(美國 아리랑 傳播者/Jilted Arirang Lovers in USA):

Fig .2.와 같이 아리랑의 선구자로 Stinson Records에서 제작한 12” LP음반을 위주로 해서 1964년 월남전 전반 운동이 시작 되었을때 미국의 칸추리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Peter Seegerrk가 발매한 라이브 음반속의 아리랑이다. 그 첫번째 음반은 ‘아리랑’을 ‘아-디-동’으로 잘못 듣고, 부른것으로 보이는데 , 미국의 째즈가수, Oscar Pettiford Singer의 ‘아-디-동 블루스/Odidong Blues’ 는 같은 공로자이나 특별히 Peter는 아리랑을 의미있게 해석한 특별한 존재로 꼽힌다.

*Kim Sisters: 한국 최초의 여성보컬 그룹이 1960년데 초 미국 Lasbegas로 건너와 인기리에 자리잡았던 가수들이 Kim Sisters이며, 영자, 숙자, 애자 세자매의 구룹으로, “목포의 눈물로 유명며, 한국의 뮤지칼 개척자인 이난영(李蘭英), KPK 악단장이였던 김해송의 딸들로 이루어진 Tree Group으로 이들의 미국에서의 활동은 6.25로 상처받은 교포들의 가슴에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Fig.3.와 같이, Kim Sistewrs는 미국의 “T.V. week”잡지의 표지에 나올정도 유명해 졌으며 1962년 아시아 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매인차트 (Billboard Main Chart)제6위에 오른 이들은 미국전역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었고, 유명쇼 프로그람에도 수십차례 출연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리랑을 부르는 한류가수로 교포와 더불어 참전용사들을 위안하는 인기 가수들이였다.

8-3.지난달의 연속:이정면 교수의 6,000Km 아리랑 길을 찾아서(아리랑 路 追跡/Tracing 6,000Km Arirang Road)

이 교수가 해 온 일을 보면 빈말은 아니다. 이 교수는 2007년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이지출판)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국내에 ‘아리랑 박사’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에 아리랑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2009년엔 영문판 ‘Arirang, Song of Korea’(이지출판)를 펴내고, 그 책이 인연이 돼 2011년 10월에 북한 초청으로 평양에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아리랑 전파 경로를 따라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수도)를 다녀오고, 북한에서 가져온 자료 등을 추가해서 올 1월 개정판 ‘Arirang of Korea’를 냈다.

틈틈이 한•일 고대 교류사 연구를 위해 일본을 오가기도 했다. 20년 전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대학에 초빙교수로 있을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고대 한반도 이주민이 일본 고대국가 형성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가 곧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출간을 위해 지난 6월 말 한국에 들어와 매일 일본공보문화원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에 가서 보니 어마어마하게 역사왜곡이 이뤄지고 있더라.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으로서 서양 사람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리자는 생각에서 꼭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일본 교수로부터 10년 전에 서문까지 받아놓은 책은 한글판과 영문판을 모두 낼 생각이다.

*강제이주 한인들의 이주경로 6000㎞를 따라가면서 고려인 마을을(Trasied Koreans Moving Road)…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집과 한국, 일본을 오가며 쉴 틈 없이 연구하고 책을 쓰는 것도 부족해 이 교수가 새롭게 투지를 불사르고 있는 일이 있다. 구순이 되는 내년에 아리랑이 전파된 경로를 따라
Fig.4.와 같이,‘아리랑 로드 6000㎞ 대장정’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배낭에서 노트를 꺼내 보여주었다. 노트에는 중앙아시아 지도며 지명, 접촉해야 할 사람들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마무리 작업 중인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다음 목표인 ‘아리랑 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달리고 있었다.

이 교수가 말하는 ‘아리랑 로드’는 1937년 소련에 의해 강제이주 당했던 연해주 한인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화물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곳곳에 짐짝 버리듯 내던져졌던 한인들에게 그 길은 아리랑 가락을 위로 삼아 눈물을 삼켰던 한(恨)의 고개였다. 지난해 이 교수가 타슈켄트의 고려인 마을에 가보니 어머니 등에 업혀 아리랑을 듣고 자란 2세들이 70대, 80대가 되어 지금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흥얼거리고 있더란다.

이 교수는 “강제이주의 역사는 소련에 의해 흔적도 없이 지워졌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이 불렀던 아리랑 가락이며 당시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해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타슈켄트까지 이주경로 6000㎞를 따라가면서 고려인 마을을 찾아가 그들을 만나보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 번에 완성되는 일은 아니지만 일단 기록을 남겨놓으면 그것을 기초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뒤따라 연구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중앙아시아에서 백지로 남아있는 지리학 연구의 새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아리랑 로드 6000㎞ 대장정’에 언론, 대사관 등 각계가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동참을 호소했다.

그렇게 시작된 아리랑과의 인연은 북한 방문으로 이어졌다. 영문판인 ‘Arirang, Song of Korea’를 펴낸 후의 일이었다. 애초에 돈이 되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교수도 이지출판사(서용순 대표)도 사명감으로 한 일이었다. 조선일보 등에 출간 소식이 보도됐지만 관심은커녕 전화 한 통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작 관심을 보인 것은 북한이었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의 집에 돌아오자 낯선 이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북한 쪽에서 메일 보내와 “북한 관련된 것이 빠져있다”며(Surveyed N.Korean Arirang History)…

메일을 보낸 이는 뉴욕 유엔본부에 파견된 북한대표부의 박송일 참사관이었다. 박 참사관의 메일은 ‘영어로 된 아리랑 책을 보고 감동했다. 좋은 책을 썼는데 북한의 아리랑이 빠져 있더라. 자료를 보낼 테니 보시고, 아니면 북한에 오셔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수는 ‘나도 천만 번 가고 싶었다. 남의 책이나 자료를 보고 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북한 관련 아리랑은 책에 넣지 않았다’고 바로 답장을 써서 보냈다.

박 참사관의 주선으로 2011년 10월 6일, 이 교수는 단신으로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87세의 나이였다. 그것도 한국에서 놀러온 지인들을 위해 3일 내내 운전대 잡고 유타주 일대를 관광시켜 주고 쉴 틈도 없이 장도에 올랐다. 북한을 방문한 이 교수를 보고 북한 학자들이 “백발 노인일 줄 알았는데 젊어 보여서 놀라고, 통 크게 혼자 와서 놀랐다”고 하더란다.

이 교수는 겁이 났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방북을 강행할 수 있었다. “참사관이 그럽디다. 대동강변에서 아리랑 축전을 볼 때 무릎이 시릴 테니 담요를 꼭 가지고 가시라고. 나를 잡아갈 사람들 같으면 그런 소리는 안 하겠다 싶어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양 고려호텔에 열흘 동안 묵으면서 다른 곳은 구경할 틈도 없이 북한 학자들과 아리랑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이 교수는 “북한은 아리랑을 비롯해서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활발한 것 같더라”면서 “남북한 통틀어 5000수 이상 전해 내려온 아리랑을 체계화해서 아리랑학을 만들자고 제안했더니 북한 학자들이 대찬성을 했다”고 말했다.

어느날 도서관에서 ‘노동자 신상을 기록해 놓은 카드가 39상자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달려갔죠. 카드를 보니 한국인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겁니다. 두 번의 방학 기간을 이용해 자료를 샅샅이 뒤져 광산 노동자였던 411명의 한국인을 밝혀냈어요.” 이 교수는 “그들에 대한 연구를 좀더필요한데 아리랑 때문에 미뤄 뒀다”면서 “그 일도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아리랑 로드 6000㎞ 대장정, 북한 아리랑 연구, 한인 광산 노동자 연구…, 노학자의 미래 계획표는 빽빽했다. 할 일이 많으니 나이들 틈도 없겠다 싶었다. 이 교수는 ‘下心(하심)’ ‘百忍有德(백인유덕)’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고 했다. ‘밑지고 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참아 넘기면 늙을 일이 없다는 것.
이 교수는 다시 백팩을 둘러메고 도서관에 간다면서 인사동 인파 속으로 걸어갔다. 늘 새로운 대장정을 꿈꾸는 노학자의 도전은 끝이 없어 보였다. Ref::2013년 8월 5일 발매된 주간조선 2268호


* 다음 편에서는 유럽과 이달에 싣지못한 자장가(Lullaby)의 곡이된 아리랑의 발견을 관찰 코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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