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09-20   Author : 이 충시
11-4, 한민족의 무형유산 아리랑 의 지역별관찰 러시아(9)아리랑의 재발견 (Scientifically Revealing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IX The Regional Survey of Arirang in Russia IX-Rediscovering of Arirang)

newspaper update 5/19/2017



아시아의 동북부에 오랜세월 자리잡고 살면서 이루어 놓은 많은 유형 무형의문화재 중에서 우리민족의 3번째 자랑인 아리랑과 연계된 숨겨진 아리랑을 재발견(再發見) 하여 보고자 합니다
러시아편입니다 . 독자 여러분께서는 많은 조언을 주시기 바랍니다



서두 ;
한민족(韓民族)의 문화재인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전민요(口傳民謠/Oral folk song))이다 ,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전통낱말 순위중, 3번째 순위로 조사 되었고, 2012년 12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록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한민족 뿐이 아닌 세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있습다. 11-1,편에서는 그유래를 , 2편,시대성 , 3편, 어원적(語源的/Etymological ) 4,지역별(地域別/Regional) 에서, 4-1 정선 아리랑, 4-2 진도 아리랑, 4-3밀양아리랑 그리고 4-4 김산, 4-5.미국분인 헐버트 박사와 아리랑 연계 그리고,4-6 Hague밀사, 4-7미국편, 4-8미국의종편,4-9 러시아편으로, 아리랑의 재 발견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11-4. 아리랑의 지역성 관찰-러시아편(我離娘 地域性 蘇聯篇 觀察The Regional Survey of Arirang-in Russia ).



아리랑은 한민족의 혼이며, 애국가라 말 할수 있으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전통민요이므로 민족의 이동을 따라 아리랑을 발견하고, 한국문화를 재 발견할 수 있겠습니다. 본편에서는 한-러(韓-蘇)국교수교 25주년을 기한 아리랑과 함께하는 Moscow의 축하행사, 2014년의 Sochi동계올림픽 행사,한민족의 시베리아 대장정 그리고 Silk road 및 바이칼호(Baikal Lake)의 몽고리안계인 한민족 시원설(始原說) 및 관련된 2차전쟁과 러시아 일본의 전쟁에 연관하여 문제화(問題化) 시킨 독도 관련을 Fig.1.의 러시아편에서 관찰 하고자 합니다

4-9-1. 러시아땅에서의 아리랑의 재발견(蘇聯 我離娘 再發見/Rediscovery of Arirang in Russia)

*공군군악대 붉은광장 무대를 빛내다! ‘2013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 군악축제
공군군악대는 지난 2013년, 9월 1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에서 열린 「2013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 군악축제( 스파스카야 바쉬냐 СПАССКАЯ БАШНЯ)」에 대한민국 군악대가 최초로 참가했습니다. 붉은광장을 찾은 7만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군군악대의 활약! 공군군악대 이혜주 중사가 그 현장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아리랑의 선율이 울려 퍼지자, 러시아 관객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순간 4달간의 준비기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고 합니다

2013년 7월 초, 전국 5개 공군 군악대에서 선발된 러시아 국제군악제 참가요원 60명은 러시아 원정공연을 위해 2달간의 치밀한 사전계획과 2달간의 불꽃 튀는 연습기간을 보냈다. 붉은광장을 당당하게 행진하는 순간만을 생각하며 땀 흘린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우리는 러시아 국제 군악제 ‘스파스카야 바쉬냐’ 참가를 위한 여정에 올랐다.
기대와 설렘을 안은 공군군악대 대원들은 인솔단장 공군본부 정훈공보실장(준장 최영훈)을 필두로 장장 9시간의 비행을 거쳐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 붉은광장에 울려 퍼진 ‘아리랑’ 최미성 하사
Fig.2. & Fig.3.와 같이 13개국 군악대가 다채로운 음악과 퍼포먼스를 준비했지만, 전통민요 ‘아리랑’이 붉은광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모든 관객들은 한복치마를 입고 부채를 든 최미성 하사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최 하사는 7세 때부터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인 김향순 선생에게 판소리 가르침을 받은 국악 영재로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전주)와 전남대 국악과에서 판소리와 가야금을 전공했다.

모스크바 시민들과 군악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은 그녀가 입은 한복에 관심이 많았는데, 공연이 끝나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줄을 설 정도였다.

러시아는 이미 가을의 기운이 완연했다. 우리가 머무르게 될 호텔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세계 각국 군악대원들로 호텔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구릿빛 피부와 검은 머리를 가진 아랍인들, 머리를 삭발하고 스님 복장을 한 소림사 친구들, 하얀 피부와 금발을 가진 오스트리아, 핀란드 군악대원 등 다채로운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축제를 꾸며 나간다는 사실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다.

다음날, 우리공군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 붉은광장에 도착했다. 공연장 주변을 에워싼 러시아 군경들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3,000석 가까이 되는 넓은 관람석이 눈에 들어왔다. 마칭공연을 잘 관람할 수 있도록 높은 관중석이 ‘ㄷ’자 형태로 설계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처] 러시아 붉은광장에 울려 퍼진 아리랑의 선율 작성자, 한국 공군 기획실, 필자도 공군출신으로 흥미가 더했다.

*4년 뒤 대한민국 평창에서 만납시다!’ 소치 올림픽 폐막식:

Fig.4.와 같이 2014년 러시아 Sochi Olympic 폐막식에서 차기 겨울 2018년 올림픽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식순에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한국의 전통동요인 아리랑을 인기상승이던 국악소녀 송소희양이 화합의 소리, 희망의 몸짓으로 여유있게 부르며 강원도 무용단 20명의 단원이 긴옷길 소매를 휘날리는 장삼무로 세계인을 초대하는 환영의 춤사위를 벌리며 막을 내렸다.

4-9-2 비참했던 우리과거”교포들의 눈물’

아리랑 문화혼의 한민족은 과거에는 기쁜일 보다는 슬픔속에서 한세대를 살았다고도 보겠다.
소수민족의 색다른 전통적인 언어와 문화 생활은 인내와 노력이 따라야 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창극(唱劇)’아리랑’은 예상했던데로 러시아인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공연장인Sobra Mannac극장은 감격과 눈물의 바다였고 특히 교민들은 자신들의 비참했던 과거를 그린 내용에 공감하는 모습이였다 한다. 극장 앞에는 공연시작 3시간 전부터 교민들이 서성거렸다며, “조국과 민족(祖國 民族)을 새롭게 느꼈다고”고 전해진다. 특히 대사중 “스탈린이 니 애비냐”에 웃슴—박수—였다 한다. Ref:동아일보 1990년 9월5일.

4-9-3.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아리랑은 고향의 노래”


고려인 강제이주 80년의 역사를 쓴 책의 내용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아리랑 연구’이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구한말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갔던 고려인은 1937년 스탈린 명령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현재 중앙아시아에는 약 30만 명 동포가 ‘고려사람’ 또는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산다. 고난의 역사인 중앙아시아 고려인이 전승한 아리랑 전문 연구서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Soviet Union time.
저술은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이 맡았다. 진 소장은 2010년부터 러시아 극동지방, 중앙아시아 고려인 1•2•3세대로부터 아리랑을 채록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했다.
Fig.5.는 강제이주 고려인들이 냉방의 허술한 열차로 이동중 많은 교민이 희생됬으며, 갖은고생끝에 추운겨울 시베리아 들판에 강제로 이주시켜 버려지듯 도착했던 첫 도착 정착지를 기념하기 위해 새워진 돌비석(石碑)이다.

지난호의 4-8-3장에서 지도와 진 소장은 “강제이주, 소련 붕괴, 독립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아리랑이 어떤 양상으로 전승됐는지에 대해 주목했다”라며 “중앙아시아, 고려인에게 아리랑은 부모를 기억하는 노래, 그리움의 노래, 고향의 노래다”라고 말했다. 정선군과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2008년부터 해외동포 아리랑 학술조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중국 조선족 아리랑 연구(2008년), 러시아 고려인 아리랑 연구(2009년), 일본 한인 아리랑 연구(2010년) 등을 펴냈다.
.최종천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이사장은 7일 “아리랑이 우리 민족 정체성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연구서로 평가받는다”라며 “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중국 동북 삼성, 러시아 연해주, 일본,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일대까지 아리랑 로드를 정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4-9-4. 민족문화의 뿌리를 어떻게 지켰는지!

대부분의 재외동포들은 타향에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모국어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거주국에 민족공동체가 형성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재외동포들은 모국어를 교육하고 지켜내는 것이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것이라 느껴왔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역할은 1923년 창간된 선봉신문, 1931년에 설립된 고려사범학교, 그리고 1932년에 창설된 원동변강조선극장이 했다. 이 세 기관은 1937년 강제 이주되기 전 원동지역에서 활동하던 17개의 모국어 신문과 잡지, 1개의 고려말 라디오방송, 350여 개의 조선학교와 고등교육기관, 수십 개의 악단과 극단을 대표했다.

고려사범학교는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 이듬해에 문을 닫게 됐고, 중앙아시아에서 다시 자리잡은 고려일보와 고려극장이 재소 고려인들에게 민족정체성을 지키고 보급하는 역할을 현재도 수행해 오고 있다.

*모국어와, 민족문화의 전파자,고려극장
소련연방, 울라디보스토크의 원동에서는 1920년대부터 크고 작은 예술단이 자생하고 있었는데, 1932년 신한촌구락부 연예부와 9년제 조선중학교 연극부원이 합심해 원동변강조선극장(遠東邊疆朝鮮劇場)을 창설했다. 이 극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두고 지역을 순회하는 이동극장의 형태로 운영됐으며 한국고전, 독립운동, 농민운동 등을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하며 재소 고려인들의 한을 대변해 줬다. 이 극장은 우리 민족 최초의 해외 극장이자 현재 고려극장의 모태이다.

러시아의 교포들의 민족문화의 지킴이는 모국어를 교육시키기, 극장을 세워 문화를 기억하게 하고, 신문을 발행하여 소식을 전하고 받으며, 교육자를 세대별로 양성 하는일 등이였다


* 다음편도 못다쓴 러시아의 대장정중 한민족의 시원설(始原說)의 ‘Baikal호’를 원정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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