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09-24   Author : 이 충시
11-4, 한민족의 무형유산 아리랑 의 지역별관찰 러시아 제2편(10)아리랑의 재발견 (Scientifically Revealing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IX The Regional Survey of Arirang in Russia 2nd, X-Rediscovering of Arirang)

newspaper update 6/16/2017



아시아의 동북부에 오랜세월 자리잡고 살면서 이루어 놓은 많은 유형 무형의문화재 중에서 우리민족의 3번째 자랑인 아리랑과 연계된 숨겨진 아리랑을 재발견(再發見) 하여 보고자 합니다
러시아의 제2편입니다 . 독자 여러분께서는 많은 조언을 주시기 바랍니다


서두 ;
한민족(韓民族)의 문화재인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전민요(口傳民謠/Oral folk song))이다 ,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전통낱말 순위중, 3번째 순위로 조사 되었고, 2012년 12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록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한민족 뿐이 아닌 세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있습다. 11-1,편에서는 그유래를 , 2편,시대성 , 3편, 어원적(語源的/Etymological ) 4,지역별(地域別/Regional) 에서, 4-1 정선 아리랑, 4-2 진도 아리랑, 4-3밀양아리랑 그리고 4-4 김산, 4-5.미국분인 헐버트 박사와 아리랑 연계 그리고,4-6 Hague밀사, 4-7미국편, 4-8미국의종편,4-9 러시아1편, 4-10 러시아 제 2편으로, 아리랑의 재 발견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11-4-10, 아리랑의 지역성 관찰-러시아 2편(我離娘 地域性 再2 蘇聯篇 觀察The 2nd Regional Survey of Arirang in Russia ).



지난편에서는Moscow 중심으로 아리랑의 영향력을 관찰 했으니 본편에서는 2016년 러시아, 무르만스크(Murmansk, Russia)에서 있었던 38년전의 대한항공 비상착륙 관계로, 국교정상화전에 있었던 두나라간의 불편한 관계를 외교부에 편승한 아리랑 친선단의 성공적인 행사소개와, 한국문화와 관련된 한민족(韓民族) 의 시원지(始原地) 및 민족 문화의 발상지로 알려진, Fig1.에서의, 바이칼 (Baikal )호 배경으로 전해오는 전통문학에서 찾으며 우리역사와 연관된 독도와 러일전쟁도관계도 관찰 하고자 합니다

10-1. 무르만스크에 꽃피운 아리랑(The Aarirang Song in Murmansk, Russia)


한국에서는 멀고 먼 곳이다. 연중 3/4이 혹한의 겨울이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한, 2016년 6월 16일인, 한 여름에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기간이었다. 온종일 단 1분도 어둠은 커녕 노을도 없이 낮이 이어진다. 일몰시각 자정, 일출시각 자정. 이방인으로서는 신기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 합니다.


38년전인 1978년 4월 20일. 대한항공 여객기 902편이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승객 97명과 승무원 13명 등 110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한국과 소련간에 수교는 물론 항공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여객기는 미국 알래스카를 경유하는 북극항로로 운항됐다. 그러나 앵커리지 공항에 착륙, 급유를 받을 시간이 됐는데도 항공기는 도착하지 않았고 교신조차 끊겼다.

여객기의 행방을 알려준 것은 외신이었다. AP통신은 당시 백악관 대변인인 조지 파웰의 말을 인용해 “마지막 교신 지점과 레이더 추적결과 등으로 미뤄볼 때 여객기는 소련 영토에 강제착륙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주한 미대사관측이 “대한항공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갔음이 레이더에 포착됐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해왔다. 국교도 없는 적성국가 소련으로 들어간 항공기의행방과 탑승객의 안전 여부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다. 항공기는 21일 오전 소련 영내로 들어가 2시간30분간 공중을 선회한 뒤 무르만스크 남쪽의 한 얼어붙은 호수에 강제착륙 당했다는 것이었다.

착륙과정에서 비행기 동체가 크게 부서지고 2명이 숨졌으나, 기적처럼 대부분의 탑승자들은 무사했다. 사망자는 한국인 1명과 일본인 1명으로, 이들은 소련 전투기의 열추적 미사일 공격으로 객실에 날아든 파편에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일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련 측과 탑승자 송환 협상을 벌였다. 훗날 조사결과 항공기 조종사와 항법사의 실수로 인해 여객기가 항로를 이탈, 소련 영내에 들어갔다가 소련 전투기 SU-15의 미사일 2발을 맞고 강제착륙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오후 7시 무르만스크 도심의 키로프 문화회관.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북극권의 개방과 북극 평화지역 설립을 제안한 ‘무르만스크 선언문’이 발표된 이곳에서 Fig.2.와 같이, 이색적인 행사가 펼쳐졌다. 한국의 가야금과 대금으로 아리랑 등 우리의 민요가 연주됐고, 부채춤 등 한국무용이 공연됐다. 한러간 상호이해와 교류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문화공연이 펼쳐진 것이다. 한국에서 온 이성애씨 등 3명의 가야금, 대금 연주는 객석을 가득 메운 7백여 현지 관객의 심금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특히 한국악기로 그들의 음악인 ‘백만송이 장미’, ‘카츄사’ 등을 연주할 때는 모두가 기립해 ‘브라보!’를 외치며 열광했다. 모스크바에서 온 한국무용단 역시 마치 묘기를 보이듯 우리의 전통 춤사위를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박진감 넘치게 펼쳐 보였다. 이들은 ‘소리새’라는 이름의 모스크바 한국춤예술단으로 한국무용을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의 아마추어 모임이라하니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이 도시가 생겨난 이후 최초의 ‘역사적인 사건’이 이날 밤 펼쳐진 셈이다.

16일에는 무르만스크에서 열린 ‘한러 북극해 항로 협력 세미나’에 우리 측에서 대거 참석했다. 이 행사를 기념해 우리의 국악과 춤 공연이 펼쳐졌고, 우리 영화 ‘건축학개론’이 러시아어 자막으로 상영됐다. 민항기임에도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미사일로 공격했던 38년 전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출처 : SBS 뉴스

10-2. 바이칼호는 한민족의 시원지 일가!(韓民族 始原地!/Wonder Baikal Lake is Beginnin of Mongorian History!)


바이칼(Bikal)이란 말은 타타르어로 부라트인의 언어이며 뜻은 ‘호수가 풍요롭다’는 뜻이다. 또한 ‘사면이 바다’라는 뜻도 있으며,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북해(北海)라 불리었다 합니다. 바이칼호는 40Km깊이 까지 볼수있는, 셰계에서 가장높은 투명도를 갖었으며, 셰계 담수의 20%를 저장하는 거대한 호수이다.그 크기도 남한 면적의 3분의 1은 된다고 본다.
본문에서 관찰하고자 하는 것은 바이칼호와 함께 따라 다니는 한민족의 시원설(始原說)이다 오랜 세월의 관찰에서 한민족(韓民族)의 뿌리가 이곳이 였을것이라고 전해온다. 사실적인 근거가 있을련지! 이시원설은 한민족과 같은 몽고계통 민족의 발원지가 바이칼호수의 주변이라는 설에서이다.

오랜 엣날에는 이 호수의 주변이 지금과 같이 춥지를 않아서 , 고대 인류가 근처 곳곳에 부족을 이루고 살았으나 신석기 시대에 기후변화로 인해 이 지역에 살던 아시아민족의 일부가 만주를 거쳐 한반도 까지, 내려왔다고 전해졌다.

또한 아메리칸 인디안의 조상이 옛시베리아에서 건너간 몽골족의 일파라는설이 오래전 부터 잘 알려진 것처럼, 이호수 주변이 세계 여러민족의 발상지라고 보는이들이 많다. DNA 유전적 계보에 있어서 , 바이칼호 주변에 사는 몽골족의 일파인 부라트족과 한민족의 유사점이 많다는것이 알려졌다. 특히 부라트족과, 몽골족과 한민족과 일본인이 인종적으로 비슷 하다는 내용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학자들이 바이칼호 주변에 주목하는것은 인종적 특징 외에도 샤머니즘적 관습과 설화의 유사성 때문이기도 하다. 돌무덤과 솟대, 오색 천들로 꾸미는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유사한 세르게 같은것들이 이지역 무당풍습의 특색을 이룬다. 효녀심청의 이야기라든지, 선녀와 나무꾼의 설화가 이곳에서도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구전되어 온다한다. 선녀와 사냥꾼은 선녀와 나무꾼으로 조금 다른 내용으로 전해진다.
*2-1.심청전: 바이칼호 알혼섬 근처에 물결이 거친곳이 있는데 예로부터 이곳을 지나던 상인들이 항해의 안전을 빌기위해, 때때로 처녀를 희생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제물로 호수에 빠진 처녀가 금빛비늘의 물고기로 화상해 신들의 세께인 바이칼호에서 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2-3.선녀와 사냔꾼: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나무꾼이 사냥꾼으로 바뀐 이야기이다 옛날 옛적에 한 사냥꾼이 알혼섬에서 바이칼호수에 내려 앉는 백조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백조들이 호수에 내려 앉자마자 아름다운 처녀로 변하더니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것이 아닌가! 숨어서 몰래 이광경을 보던 사냥꾼은 처녀들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 처녀의 백조옷을 감추었다. 이 처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사냥꾼과 결혼해 11명의 자녀를 낳아 길렇다. 이 11명이 부라트족의 선조가 됬다고 한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던 어느날 아내가 사냥꾼에게백조옷을 한번만 입게해 달라고 조른다. 사냥꾼은 이제 나이도 들었고아이도 11명이나 되는데 무슨걱정이겠느냐 생각하고 아내에게 숨겨 두었던 옷을 내준다. 옷을 입은 아내는 백조로 변했고연기가 빠져 나가는 유르타(뷰라트족의 천막처럼 생긴 통나무집)의 천정의 구멍을 통해 하늘로 날라가 버렸다는 설화다.

*2-4.고구려 민족의 발상지!:바이칼호 주변이 고구려민족의 원조인 코리몽골족의 발상지라는 주장도 있다. 바이칼호 인근의 코리족의 한파가 동진하여 부여족과 고구려족의 시조가 되었다는이야기가 몽골족 주위에 내려오고 있다는 어느학자의 조사결과도 있다. 어느것도 정설이라고는 할수 없으나 그러나 관련성을 무시 할수는 없다고 한다.

10-3.문화의 발상지인 바이칼호의 철도와 2차전쟁 그리고 독도


연관성(文化發想地, 二次戰爭 & 獨島/The Beginning Culture from Circum-Baikal Railway & Dokdo During 2nd World War).바이칼호의 겨울은 2월이 절정이며1월보다 낮으나 얼음은 더 두텁게 언다, 보통 그 두께가 16”-60”(40cm-1.5m)인데 기온은 2월 영하 --71F(-22C)이며 3월 부터 녹으나 이전에는 10Ton이하 차량이 6mile(10Km )이하 속도로 운전하라는 표시가 있다. 이호수의 북극해로 흐르는 앙가라강에 수력발전용 댐 건설로 빙상위로의 수송이 어려워 졌다. 그러던중 1904년 2월 러일전쟁 당시에 러시아가 횡단철도를 완성하기 전에 일본이 서둘러 전쟁을 이르켰다

결국 일본은 시베리아 횡단 철로가 완성되기전인 1905년 10월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이때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로 전쟁물자의수송이 불가해서 수에즈 운하를 돌아6개월이란 긴 항해끝에 한국해협을 통과 해야 울라디보스톡으로 자리잡고 전쟁을 할수가 있었다.이때였다


Fig4.와 같이 일본은 러시아 함대를 대적하기에 가장 좋은위치인 독도와 울릉도에 망루를 세웠고 이때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일본의 독도침탈은 여기에서 시작댔다. 일본과 러시아는 독도 부근에서 서로 해전으로 싸웠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러시아의 해군을 몰아내기 위해서 독도에 전쟁망루를 비롯한 무선 전신기지를 세워서 정찰을 하고 대비토록 한 것이다. 군사적 요충지였던 것이죠

그것은 러일전쟁의 결정적인 전투인 ‘동해해전’의 영향 때문이다.위와 같이 일본과 러시아는 독도 부근에서 서로 해전으로 치고 박고 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러시아의 해군을 몰아내기 위해서 독도에 전쟁망루를 비롯한 무선 전신기지를 세워서 정찰을 하고 대비토록 한 것입니다. 군사적 요충지였던 것이죠. 해전을 하는데 서로의 함대는 물론이고 거기에 어떤 땅에서 지원까지 한다면 그만큼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상황도 없겠죠. 독도 근해에서 러시아 전함 니콜라이 1세 호 등 4척의 전함이 일본군에게 항복한다. 동해의 독도에서72km 떨어진 바다는 함선들의 무덤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계획된 러일전쟁의 희생물로 짓밟힌 힘없던 한국의 수치스런 한 시대였다. 이제 사과는커녕 억지 주장 까지 하는 이웃에 더 이상의 너그러움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독도의 캠패인이 절대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됨니다.


*다음편도 못다쓴 러시아 연방때의 교민의 민족찾기투쟁을 과 한민족의 강제 대이동을 관찰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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