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09-37   Author : 이 충시
타이타닉 묘지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서 NO.1. (Survey of The Hiden Story of Titanic in the Fairview Lawn Cemetary NO.1.)

newspaper update 9/22/2017



서두 ;
필자가 오랫만에 보스톤 북부의 항해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그 거대함을 자랑하던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인해, 단체로 뭍인 묘지(墓地/Cemetary)를 방문하게 되어 1998년에 개봉되어 거의 반년을 흥행 속에 상영했던 영화(Titanic Movie film by James Carmeron)의,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고 , 한편 한국의 사고 경위와 비교되는 관심사인, 선박조립술, 조립자재, 날씨, 통신시설, 안전장치 및 항해술을 비교하면서 이글을 쓰고자 합니다

영국의 Southampton항을 출발하여 미국의 뉴욕으로 향하던, 지금부터 105년전인, 1912년 4월 10일 항로에서4일동안 2,207명의 승객을 태우고 별탈 없이 달리던, 이 거대한 배는 1,505명의 목숨과 함께 차가운 북대서양의 깊은 바닷속으로 서서히 가라 앉아버렸던 시체들이 안장된 캐나다의 Nova Scotia, Halifax, Fairview Lawn 묘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거대한 선박의 주위에서 일어난 사실들(大型船舶 周圍 事件/What Happened to Taitanic from Around)


The name Titanic was derived from Greek mythology and meant gigantic. Built in Belfast, Ireland, in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as it was then known), the RMS Titanic was the second of the three Olympic-class ocean liners—the first was the RMS Olympic and the third was the HMHS Britannic. They were by far the largest vessels of the British shipping company White Star Line’s fleet, which comprised 29 steamers and tenders in 1912. The three ships had their genesis in a discussion in mid-1907 between the White Star Line’s chairman, J. Bruce Ismay, and the American financier J. P. Morgan, who controlled the White Star Line’s parent corporation, the International Mercantile Marine Co. (IMM).

1-1.RMS Titanic호란 이름은 Fig.1과 같이, 그리스(Greek)의 거대한이란 뜻이며 RMS의 뜻은 우편선(Royal Mail Ship)이란 의미로, 1909년 3월에서 1912년 4월에 건조했으며, 그시대의 3대 대형선박으로, 첫째는 RMS Olympic, 3째는 HMHS Britannic이어서 2번째의 위용을 가졌으며, 높이 175ft(53.3m), 폭은 92ft 6inch(28.2m)이고, 길이가 무려 882ft 9 inch( 269.1m) 짜리의 영국제 호화 유람선인, 타이타닉호는 5대의 Boiler와 2대의 Steam engines , Profellers 로 46,000HP(Horse Power)의 위력을 갖었으며, 승객 2,435, 승무원 892명 도합 3,500명을 승선시킬 수 있었으며, 무게만도 4만 6,000톤짜리 배가 과연 어떻게 침몰했을까 하는 의아심이 가기도 하나 분명한 부실한 원인이 있으리나 생각됩니다.

그 시설면에서도 100년 전인데 수영장(Salt water swimming pool), 체육관(Gymnasium), 터키탕(Turkish bath), 사우나(Steam room),냉탕(cool room), 온탕(hot room) 그리고 마사지 탕((Massage room) 과 심지어는 독서실까지 있었다고 하니 현대의 시설에 못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1-2.Titanic의주변(周邊/Titanic Shipping Around)은 원래 계획된 항해 거리는 375mile(600Km)로, New York 도착일은 4일후인 4월14일 이였고 Titanic 호가 항해하고 있는 바다 주변에서 항해를 하던 여러 배들 중에서는 타이타닉호가 가고 있는 방향에 빙산들이 많이 떠다니고 있다는, 경고성 무전을 계속 서로 주고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이타닉호에는 타이타닉호를 소유하고 있는 ‘화이트스타’ 회사의 전무(專務)와 설계사 등 회사 관련자들 외에도 수 많은 고위, 부자들이 타고있었으나 빙산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으며 오로지 약속 시간보다 빨리 목적지에 닿을려는 욕심만을 부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상위 사람들이 그런 상태이니 선원들도 이 배의 위력에 자만하여 21-24Kn(노트/39-44km/h;24-28mph)라는 속도로 바다를 질주하고 있을 때., 어느새 해는 지고 북대서양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한층 더 매서워질 무렵 망루에서 바다를 살피던 선원은 Fig.2.와 같이 뭔가 이상한 물체가 앞에 나타난 것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들는 물체의 전방에 나타난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이 ‘빙산’(氷山/Iceberg)임을 확인한 순간 얼른 비상 종을 마구 울리기 시작했고 항해사는 바로 망루와, 전화통화를 한 직후 키잡이에게 키를 돌리도록 했지만. 원래 빙산은 물 위에 보이는 것보다 물 밑에 잠겨있는 부분이 훨씬 컸기 때문에...이미 배의 옆구리는 빙산과 부딪치면서 상처를 일으킨 후였습니다

배에 타고있던 사람들은 약간 당황하긴 했어도 별일 아닌 것으로 판단, 각자 할일을 계속했지만 이미 배의 오른쪽 6호 보일러 실에는 차가운 북대서양(Atlantic Ocean)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dward Smith선장(Captain)은 급히 선원들과 배를 점검했더니 너무나 빨리 물이 쏟어져들어오는 바람에 벌써 배는 구제하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발견했답니다.

1-3.타이타닉의 무선 연결(船舶 無線連結/Radio Communication): Titanic호는 근처의 다른 배들에게 구조신호를 보내고.. 배에서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는데...
배가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사고를 생각하지 않는통에 구조작업이 더 늦어졌다고 보아집니다. 통신망은 Marconi International Marine Communication 에서 맡았으며 2 무선사(無線師/Operator.:Jack Phillips & Harold Bride)에 의해서 24시간 근무하는데 주업무는 승개들의 수신 및 발신(受信 發信) 업무가 주였고 기후(氣候/Weather)와 얼음(氷山/Iceberg) 상태를 보고 했다고 합니다. 주파능력은 500-1000kHz(300-600m wavelength)였으며 Morse Code(MGY)로 통신이 가능했다 합니다

주위의 불과 15Km 떨어진 곳에서 항해 중이던 California Ship에서 전보를 받았으나 Titanic호의 전기가 고르지 못해 깜밖 거렸기 때문에 Morse Code해석이 어려웠고 마침 교대시간 이기도 해서 섬광효과 때문에 구조요청을 받지 못했다고 전해 지며, 그날 따라 안개가 짙어서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빛으로 신호를 했으나 감별이 어려워 지나는 선박들이 지나쳐 갔다고 전해집니다. 기다리던 선박이 도착하는데 최소한 몇 시간이 필요한데 찬공기의 흐름이 생기고 심한 바람으로 빛에 굴절이 생겨 보내지는 Morse Code에 혼란이 생겼다 합니다.

1-4. 페어뷰 론묘지 탐방(墓地 探訪/Visiting of Fairview lawn Cemetary)

Halisfax Nova Scotia에 고이잠든 고인들의 숨겨진 한맻친 이야기를 뜻밖에 관광범위에 계획되어 있어서 새삼 관심을 가지고 사진속의 동행분과 105년전의 숨은 이야기를 살펴 보았습니다.

공원은 1893년에 조성됬고 1894년에 Greenland Lawn Cemetary에서 관리 하다가 개인관리가 어려워 Halifax City Hall에서 인수밭아 Fairview Lawn Cemetary로 명칭하여 관리 하고 있답니다


Titanic호에 승선했던 알려진 승객 2,207명중 1,505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290명을 분묘했는데 150명은 신분이 확인되고 40명은 확인이 불가하여 무명으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사후이지만 친구, 친척 및 가족들이 많이 살피고 있었으며, 지금도 돌보아주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구조할 당시 어린이와 연약한 여자부터 피신을 시켰기 때문에 남자들의 묘가 많았으며, 여자들은 몇사람뿐이였는데 Lakehead University 연구팀이 DNA로 확인하여 2세에서 6세의 어린이 이름을 발견하였고, 애석한 사연의 기록과 함께 꽃과 인형을 방문객들에 의해서 놓아 주었었습니다.

특기할 사람의 기록에는 1869년 에 설립된 White Star Line회사의 아들인 Ismay가 아끼던 갑판관리인인, Edward Freeman & Edward Sarmuel 를 구조했으나 또 다른 선원을 구조 하다가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침몰하는 Titanic 과 함께 영원히 잠들었다고 합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1985년,. 미국 해군의 지원하에 ‘Robert Duane Ballard(June 30, 1942)’라는 사람이 타이타닉호를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여 그 전에도 계속 탐사를 했지만 모두 실패한 일을, 8월 마지막날 수개월에 걸친 탐사작업도 거의 끝나갈 무렵, 미 해군이 제공한 ‘Argon Technic(By Argon Gas technic)’이라는 기술로 심해탐사정이 심해(深海)에서 어떤 영상을 보내 찾게 되었는데, 그바로 타이타닉호의 보일러실과 석탄들이 보였으며.타이타닉은 물속 3,900m나 되는 심해에 105년이나 가라앉아있었던 것이고 후손들은 그 배를 다시 발견했다고 합니다.
1986년에는 2차탐사를 했는데 그 때, 사람들은 타이타닉호의 갑판에 추모의 글이 씌어진 구리판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비교분석으로 사고의 원인을 과학적인 관찰을 하겠으며, 한국의 세월호가 2014년 4월 16일 8시 50분에 459명중 287명의 실종을 했었는데, 이를 선박 관리, 안전관리 그리고 인륜적(人倫的)인 면까지 비교 관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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