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복 RN, IBCLC :
국제모유수유 전문 상담가며 간호사

약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간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 간호학전공






   Vol-No : 06-25 Author : 이지복 RN, IBCLC
변하지 않았다.

update 6/20/2014



어느 한국분이 내가 다니는 교회를 물어 온 적이 있었다.



“동네교회”라는 내 대답, ‘ 하나님을 믿지 않는군’ 그분의 반응.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1985년 임시숙소로 있던 캠퍼스하우징 길 건너, 하얀 벽을 높이 올린 종탑에서 시간마다 낮게 퍼지는 소리가 울리는 교회가 있었다.
어느 일요일 창가에서 그 건물 속으로 몰려 들어가는 시간과 몰려 나오는 시간을 확인하고 그다음 일요일엔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갔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세 아이들이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린이 주일학교, 고등부까지 마치고 이젠 직장을 찾아 떠났지만,
우린 아직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늙어 가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얀세례복을 입은 영아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발코니에서 내려 보던 그 아이의 커다란 눈과 금발의 머리, 치렁히 내리는 유아세레복….유아세례를 받는 아이를 목사님은 가족을 뒤에 이끌고 교인들 사이를 선보이고 다녔었다.


그 유아세례복은 대대로 물림을 받은 것이랬다.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들 축구코치를 하는 중, 임신 24주에 양수파열이 와서 3차병원에서 제왕절개술로 출산을 했었다.
신생아 중환자실 NICU에 1킬로그램도 안되는 미숙아로 입원되어 자주 그 병원을 가야 했는데, 나도 그들을 운전해 주고 다른 아이들을 봐주는 일을 하곤 했었다.
다른 분들은 음식을 배달하기도…


태내성장이 다차지 않아서 나온 아이를 미숙아Preterm라고 한다. 미국에서 출산되는 8명중의 하나는 미숙아라고 한다.
그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고 하지만 상상되는 원인은 많다.출생체중에 따라서, 태중기간에 따라서 다시 구분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영유아사망의 가장 큰 이유는 미숙아Preterm이고, 의료비용이 $26 billion이상(2005년통계)이라 하는데, 무엇보다 미숙아나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뇌신경발달이나, 심장, 폐, 내장기의 발달, 시력, 청력장애와 감염의 위험, 신체성장발달에도 영향을 미치는 미숙아의 의료관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많은 의료기술의 혁신으로 사망률을 줄이고 있고, 의료경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2012년 미국소아과학회AAP는 미숙아에게 모유Human milk 수유를 권장했다.
모유 Human Milk가 음식Nutrition이고 약Medicine이라고 한다.
생후 14일간의 모유를 먹일 때 장을 보호하고 생후 28일을 모유수유하면 폐를 보호한다는 연구도 읽히고 있다.


세상 많이 변했다.
모유를 기본으로 해서 미숙아의 생존과 발달을 위해서 조제하는 일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부작용이 적은 이유에서, 면역을 위해서 이제 소아의학계가 들고 일어선 것이다.
지금은 80% 이상이 모유수유를 시작하고 있다.
특히 뉴잉글랜드지역은 모유수유의 땅Lacto-nesia으로 불리고 있는데, 작년 통계에 의하면 메인주가 모유수유율 최고, 뉴햄프셔주, 커네티컷 주, 로드아일랜드주, 버몬트주 모두 상위권에 속한 현상으로 그런 별명을 붙이게 된 것이다.
아직도 미남부주에서는 모유수유 20%로 밑돌고 있는 주들이 많다.


이젠 신생아중환자실, 아기 침상 옆에 모유수유하는 어머니를 위한 안락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는 미숙아이도 그엄마의 품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아이를 대신 안아 주는 직업도 생겼다.


세상 참 많이 변하고 있다.


언제부터 교회를 다녔는지 모르지만 나의 교회는 내 삶 시작과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죽음을 당하시고, 그후에 나는 태어 낳고, 내어머니는 종가집 큰며느리로서 전쟁후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시어머니의 구박을 많이 받았었다고 했다.


미국남장노교가 세운 미션스쿨에서 중고등학교시절을 보냈고, 대학시절에는 기독학생회를 통해서 미아 8동 판자촌봉사활동을 하던 중 당시 육영수여사의 초청을 받아 청외대에서 박정희대통령과 악수도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의 텍사스유학시절에는 국제여성의 모임이 있는 남침례교회를, 듣기 쉬운 영어설교가 좋아서 다녔고, 1985년 이곳 동부에 살게 되면서 집근처의 아주 오래된 필그림 초기에 세운 교회에 다니고 있다.
이곳에 한국인이 있는 줄도 몰랐었고, 누구도 교회에 나오라고 권하는 분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가까이 보이는 교회에 나갔었는데….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내 하나님은 내 속에 있고 나는 그와 같이 살고 있으며 내 삶은 기도...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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