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 & Story : 서운사 수인 수님






   Vol-No : 07-08 Author : 서운사 수인 스님
말썽꾸러기 엄마의 걱정

update 2/20/2015



십대 말썽꾸러기를 둔 한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고 친구와 어울려 다니는 재미에 빠져있고, 행여 집에서 얌전히 있을라 치면 밤새도록 핸드폰을 손에 쥐고 친구들과 연락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아 아이의 장래가 걱정이라고 한다. 다른 자식도 있지만 그 아이들은 별문제 없이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로 크고 있고 주변을 보아도 이런 우리 아이 같은 경우가 없어서 속상해 어찌해야 좋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자식이 속상한 일을 하면 참 고통스럽고 아프다. 정성을 다해 금이야 옥이야 키운 내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비수가 된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나의 분신,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크기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우리아이가 공부 잘 해 좋은 직장 얻고, 좋은 배우자 만나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마음이다. 자기 잘 되라고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키우고 있는 데 그런 노력도 몰라주고 지 멋대로 혼자 큰 것마냥 행동할 때 그 절망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많은 부모들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자식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름 좋은 부모가 가져야 할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해서 부모들이 자식에 게 가지는 지나친 기대와 관심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과 강요를 낳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내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부모는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거나 망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내 자식에게 옳은 것과 행복을 위한 것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과연 그런가?
사실 ‘내 자식’의 ‘내’가 붙는 순간 우리는 이미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가까운 친구가 아이문제로 찾아와 조언을 구한다면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며 객관적으로 조언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내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찢어지는 내 마음을 추스르면서 객관적 판단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내자식이라는 집착에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고통이 시작된다.

자식에 관한 문제로 고통 받는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고통 받는 그 마음 그대로를 인정하라고 전해주고 싶다. 다른 것으로부터 오는 고통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객관성을 잃어버리기 쉬운 고통에 사로잡힐 때 그것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상처는 어차피 아플 만큼 아파야 낫는다. 매일 그 상처를 바라보며 ‘아프다 아프다’ 왜 이렇게 안 낫지?’하고 생각한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났으니 아프구나’하고 인정하고 오히려 여유롭게 기다려주라. 상처도 아픈데 안 낫는다고 보채는 데서 오는 고통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아이가 성장통을 지독하게도 앓고 있구나’하고 더 이상 생각을 발전시키지 말고 거기서 끝내라.

또 하나는 아이의 문제가 다른 이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이라면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일단 저지하고 치료책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에서 온 것이라면 간섭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내자식이기 때문에 더 어찌어찌 해야 한다는 것은 순전히 부모의 집착이고 욕심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나름 추구하는 행복의 모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잘 기다리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일은 마음 편히 잘 볼 수 있고 기다려 줄 수 있지만 자식 일은 어렵다는 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부모 자식간에 평화와 행복을 깨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자각하고 다른 일과 같이 잘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것이 잘 안되고 어렵습니다’ 라고 생각되는 그 마음을 거기서 멈추고 받아들이고 기다려보자.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볼 때면 누구라도 세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내어준 손이 아이가 제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걷기 시작하고 난 뒤에 그 손은 앞을 잘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을 가리켜주는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혼자 걷는 아이에게 묵묵히 옆에서 지켜 봐주는 일 그것 말고는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이상의 것을 하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잡고만 있으려는 그 손을 내려놓는 일, 지금 시작해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이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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