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紀行) 작가 : 강 순조 (Susie Kim)






   Vol-No : 08-14 Author : 강순조 (Susie Kim)
Mexico Cruise (1)

update 4/1/2016



멕시코 Bon Voyage!

많은 분들이 크루즈를 하셨지만 혹 관심이 있지만 기회가 없었던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글을 써 본다.
몇 년 전만해도 여러 Cruise line이 샌프란시스코(SF)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Princess line만 출발을 한다. 우리가 TV 에서 즐겨 보았던 Love Boat도 이 Princess Cruise line에서 촬영을 해서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았다.
흔히들 샌 프란시스코(SF)를 세련된 예술과 문화적 결합을 즐길 줄 아는 이웃 들이 모여살고, 새로운것을 두려워 하기보다 즐기고 도전하면서 또 다른 새 것을 창조해 내고 동시에 미국을 변화시키고 이끌어가는 선구자적인 역활을 하는 역동적인 도시라고들 한다.

“시티 바이 더 배이 (City by the Bay) 아니면 “포그 시티 (Fog City)”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SF는 이름 그대로 포근히 안개에 쌓여 있는 날이 더 많다. 오죽 했으면 맠 트웨인은 자기가 보낸 제일 추운 겨울은 SF에서 보낸 여름이었다고 했을가 싶다. SF는 여러 종족이 모여서 살면서 각자 특유의 문화적 전통을 지키고 또 다른 문화를 흡수하고 받아 들여 자기 것에 결속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고 있는 특유한 다 민족의 대표적인 맬팅 팥이다.

SF는 시티 안에 또 다른 많은 작은 시티가 밀집해있다. 예를 들어 차이나 타운에 가면 길 입구에 기와 지붕을 얹은 정자가 한 눈에 들어오고, 카스트로에 가면 동성애자들이 그들의 깃발을 전봇대 마다 달아 놓았으며 카스트로라는 길 이름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리틀 이탈리아, 러시안 힐, 재팬타운, 멕시카나 그로서리 등을 보면 누구의 설명이 없어도 어떤 민족들이 군집해 사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흘러나오는 커리냄새에 인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구나 하고 짐작도 할 수 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SF는 약 800,000인구의 대 도시이고, 이중 백인은 절반도 안되는 48%, 그 다음이 아시안으로 35%인데 앞으로 10년 안에 순위가 바뀔 것이라는 연구 보고도 있다.
그리고 하루에 시티안으로 직장 등의 이유로 들어오는 사람이 265,000명이고 나가는 사람이 103,000명이며, 일일 평균 134,000명의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또 하나 어떠한 도시의 추종도 불허하는 것은 많은 식당들이다. 안내 책자에서 하루 3식을 매번 틀린 식당에서 식사를 해도 한 번씩 다 돌려면 3년 반이 걸린다는 것을 몇 년 전에 읽었는데 지금은 더 많지 않을가 생각된다.

이렇게 예술과 문화와 다 민족의 개성과 특성이 뚜렸하면서도 서로 얽히고 설켜 새로운 얼굴로 계속 바꾸어져 가는 다이나믹하고 활력이 넘치는 곳이 내가 살고 있는 SF이고 누구나 한 번은 와 보고싶어하는 곳이다.

우리는 이런 SF를 떠나 또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즐기기 위해 멕시코 크루즈를 택했다.
나이 때문인지 의욕 부족인지는 모르지만 멕시코 크루즈를 선호한 이유는 편리함이 크게 작용했다. 곧 바로 SF항 만에서 떠나니, 두 세시간 일찍 공항에 가서 기다리거나 비행기를 탈 필요도 없으니 여행시에 거치는 순서의 한 두 단계가 줄어지는 것이다.

그랜드 프린세스의 여행 스케쥴에는 오후 1시 이후에 승선이 시작된다고 했는데 아홉 번이나 멕시코 크루즈를 한 베테랑들의 의견을 따라 배 안에서 점심 해결도 할겸 우리는 승선 체크인 하는 입구에서 11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항구에서 제일 멀리 사시는 파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전9:15분에 우리 집에 오시면 같이 10시까지 시티 중앙에 사시는 조선생 집으로 가서 뮤니(시티 버스) 와 전철을 타고 피어로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어라 ! 8시 반에 오셨다. 우리 또한 가방을 문 앞에 내어 놓고 서성 거리든 참이라 바로 조 선생댁으로 가니 거의 4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이렇게 여행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설래게 한다.

6명의 노장들은 가방을 밀고 땡기면서 뮤니를 타는 곳 까지 거의 두 블락을 걸어가서 기다리는 동안 시니어의 요금인 75전을 어디에 어떻게 넣고 티켓을 꼭 받아야 다음 전철을 탈수 있다는 등의 강의를 받고 (요금이 올라 $1 인 것도 모르고...) 어미를 따르는 새끼 오리들 처럼 낑낑대며 가방 올리고 교육 받은 대로 동전 넣고, 티켓 받고 자리에 앉았다. 항상 운전만하고 다니든 길들이 버스 안에서는 틀린 풍경으로 보였고, 사첼을 메거나 가방을 든 젊은이들이 커피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가는 것 보며 나도 저들 처럼 목적지가 있고 할 일이 있다는 자부심에 어깨가 약간 으쓱해졌다. 약 40분 후에 전철로 바꿔 타고 새로 단장 된 피어 27에 도착하니 시간의 여유도 많고 지난번처럼 한 가정 $100정도 드는 교통비를 쓰지 않아서도 기뻐했다.

오전11시에 신분 확인을 위해 여권을 보여주고 가방 체크인 하고 앞으로 다시 배를 내릴 때까지 어디를 가든 꼭 가지고 다녀야 할 승선 카드도 배부받고 그랜드 프린세스에 온 것을 환영 한다는 환영 인사를 겸한 사진 촬영을 하고 우리는 14층의 방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약속 한대로 부페 식당에서 맞나 즐거움으로 헛 웃음도 웃고 재잘거리다가 오후3:30분에 있을 응급대처 훈련 (머스트 드릴)을 받기 위해 헤어졌다.

각 방에는 각자의 구명 조끼가 준비 되어있고 방문 뒷 쪽에는 어디로 모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2,600명의 승객이 있으니 반드시 표시된 장소로 가야만 한다. 우리는 약 30분에 걸쳐서 응급시의 방송은 어떻게 나가고, 배의 고동소리의 패턴은 어떻고, 어떻게 구명 조끼를 입고, 정해진 장소는 어디고 하는 것을 상세히 교육 받고 돌아왔다.

같이 간 한 일행이 한 번은 늘 하는 것이라 여러 번을 했기 때문에 귀찮아서 머스트 드릴에 가지 않았더니 나중에 개별적으로 반드시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고 교육을 따로 받았어야 했다고 한다. 물건을 살 때도 물론이지만 육지를 내리고 오를 때나 오늘 같은 중요한 예행 연습이나, 정장을 한 식당 등에서 반드시 카드를 스캔 하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나의 생활 패턴을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응급시를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을 돌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로 잘못했다고 비난하고 책임 전가하고 위로금 더 받아 내기 위해 단식 투쟁 하든 부모들과 또 이웃의 슬픔을 개인의 정치 생명에 써 먹기 위해 발버둥치든 정치인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

오후5시가 되니 출항을 알리는 배의 고동 소리와 방송이 있어 모두 들 16층으로 가서 밧줄을 올리고 무장을 한 해양 경비대의 옹호를 받으며 서서히 SF의 명물인 알카트래즈를 오른쪽으로 끼고 금문교 밑을 지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파이낸셜 섹숀과 코잍 타워를 둘러 싸고있는 아름다운 SF를 뒤로보며 멕시코의 푸에르타 바야르타 (Puerto Vallarta)를 향해 거대한 움직이는 도시는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나 또한 오렌지 쥬스가 들어간 테킬라 선라이즈를 들고 비바 멕시코로 살룻~하면서..

바다에서 첫날

맠 트웨인이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떠나 바람 따라 배를 흘러 가게하고, 탐험해라, 꿈꾸라 발견하라”고 한 것처럼 로맨틱한 돗단 배는 아니지만 새로운 날 새로운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랜드 프린세스는 태평양을 따라 남쪽으로 바하 캘리포니아 (Baja California) 연안을 끼고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기 위한 꿈을 쫓는 자들을 태우고 움직였다.

약간의 구름은 끼었으나 잔잔한 바다와 화씨63-65도의 기온과 순풍을 즐기며 첫 날엔 거의 1,050 노티컬 마일 (육지에서는 1,852 미터)을 항해 했다.

내일부터 한 시간을 땡겨야 하는 것을 착각하고 새벽6시인줄 알고 일어났더니 5시였다. 아직 엑서사이스 와 스파룸은 문을 열지 않았음으로 배의 중앙 위치에 있는 피아짜의 인터내셔널 까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으니 텅빈 피아짜에 노인 한 분이 오셔서 커피를 주문하고 옆 테이불에 앉는다. 아침 인사를 하고 대화중 은퇴하신 해군이고 나의 반 평생을 살아온 로드아이랜드 주의 뉴 포트 (Newport, RI)도 너무 잘 알고 있어 대화가 쉽게 이어져 갔다.
이번이 29번째의 크루즈이고 1978년 부터 일년 반을 한국에서 복무했고 4년 전에는 부인과 같이 2주간의 한국 방문을 통해 눈부신 한국의 발전상과 바개인 쇼핑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이렇게 우리는 이른 아침 가끔씩 만나 커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휴가가 주는 뉴앙스 때문인지 아니면 여행의 즐거움을 공유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배안에서는 식탁 옆에 앉은 사람이나, 영화관에서 앞 사람이나, 핱 터브에 같이 앉은 이 등 누구와도 대화가 쉽게 이루어진다.

크루즈하는 동안 배안에서의 생활은 매일 저녁 배달되는 프린세스 패더(patter)를 읽고 결정한다.
아침 스트레치나 쥼바 엑서사이스 같은 프로그램은 매일 반복 되지만 교양 강좌나, 영화, 건강, 예술등 다양한 주제의 강의도 있고, 골프 퍼딩 콘테스트나 브리지 게임 등은 지속되어 최후의 승리를 위해 짜릿하게 도전하기도 하며 볼 룸 댄스 파티나 가라오케, 탈랜드 쇼, 보석 시계 부틱 숍 등의 세일 광고 등등으로 3페이지의 스케쥴이 있어서 무료할 수가 없다. 물론 본인이 원하면 하루 종일 수영장 옆에서나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을 읽어도 된다.

어제 저녁에 배달된 패더에는 프린세스의 유래 설명이 있었다. 1962년 시아틀의 월드 페어때 극심하게 모자라는 호텔 방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지방 사업가 스탠리 맥도날드의 기발한 착상으로 크루즈라인 사용을 생각했고 지금은 16개의 대형 프맅이 있고 우리가 탄 배는 비교적 적은 배이다. 제일 큰 것은 3,08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데 우리가 탄 배는 2,600명의 승객과 1,200명의 종업원이있고 109.000톤의 배수량에 길이는 953 피트 라고 한다.


Views: 128   

contact info : susiek@thegrapevinetimes.com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 운동

참여하기 : MORE DETAI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