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紀行) 작가 : 강 순조 (Susie Kim)






   Vol-No : 08-31 Author : 강순조 (Susie Kim)
동유럽 크루즈 와 드라큘라의 발자취를 따라서: 전설인가, 진실인가? (1)

update 8/5/2016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부다페스트에 거의 14시간 후에 도착했다. 수면 부족과 좁은 공간에서 굳어진 몸을 펴기위해 심한 팔 움직임과 활기찬듯한 발걸음으로 나오니, 약속한 대로 크루즈 회사에서 나온 안내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여정은 부다페스트에서 시작하여 다뉴브강의 700 마일을 열흘간 동남으로 항해하여 6개국을 거쳐 루마니아 져주(Giurgiu, Romania)에서 하선한 다음 버스로 부카레스트(Bucharest, Romania)를 걸쳐 루마니아 북부 트란실바니아로 가는 16일간의 발칸반도 여정이 었다. 볼가강 다음으로 긴 다뉴브강은 독일 남서부에서 시작해서 동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다뉴브강의 중간지점인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리버 크루즈(River Cruise)로 10일간, 다음은 져주(Giurgiu, Romania)에서 버스로 부카레스트(Bucharest, Romania)를 거쳐 Transylvania를 가는 6일간의 여정이다.
1. 부다페스트(Budapest)

배에 도착하니 샴페인 토스트로 환영하여 주었고 158명의 승객이 모두 승선할 때까지 기다려야 함으로 가방도 풀고 다음 열흘간의 생활 공간이 될 방도 정리했다.

우리의 배 Ms River Voyager는 지난 3월에 첫 항해를 시작해서 인지 새집과 새 가구의 냄새가 기분 좋게 은은하게 풍기는 것 같은 깨끗한 배 안을 둘러보았다.
미국 승객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음으로 1930년 대 이후의 블루칼라의 음악인 재즈와 컨트리뮤직을 주제로 장식했고, 음악 노트가 그려진 카펫이나, 버번 스트리트 비스트로, 코튼 클럽 라운지, 블루 노트 라운지 등의 이름이 붙은 function room들과 루이 암스트롱, 윌리 넬슨, 케니 로저스, 마이클 잭슨 등 많은 음악가의 포스터가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간단한 점심식사 후에는 내일부터 시작될 여행 일정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는 1873년에 세 도시가 합쳐 부다 페스트로 명명됐다고 한다. 2백만 명이 사는 도시 중앙을 다뉴브 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고 19세기의 체인 브릿지로 연결하여 언덕 위의 부다와 오부다가 있는 서쪽과 동쪽의 평편한 페스트가 합쳐 부다 페스트를 이루었고, 언덕을 따라 중세기부터 수많은 발자국이 지나간 자갈 깔린 부다 쪽의 길을 올라가면 명물인 구시가가 펼쳐지며 로마 제국 때부터 내려온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가 있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다 페스트는 짙은 초록색의 나무 사이로 다뉴브 강을 가운데 두고 중세, 고딕, 로마네스크양식의 웅장한 건물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것이 동유럽의 파리라고 자부하는 만큼 손색없이 아름다웠고 첫인상은 화려하고 웅장한 수많은 교회와 모스크였다.

파란만장한 역사 때문에 많은 건물이 훼손됐거나 사라졌으나 도서관으로 바뀐 왕궁의 겉모습은 아직도 그대로이고 13세기의 트리니티 광장에 가면 13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세운 유명한 마챠스(Matthias) 성당이 있는데 원래의 건물은 오토만 점령 때 모스크로 사용하면서 거의 파괴된 것을 오랜 세월에 걸쳐 원형에 가깝게 재건하였다고 한다. 일행 중 한 부부 말이 10년 전에 왔을 때도 복구 중이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을 볼수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렌즈 조셉 1세가 1867년 헝가리 왕으로 대관식을 올린 고딕 스타일의 마챠스 성당은 그 화려함과 섬세함으로 멀리에서도 모든 이들의 눈길을 끌어들인다. 특히 광택제를 바른 여러 가지 색깔의 지붕과 스태인 글라스로 만든 로즈 창문은 중세기의 원형에 가깝게 재건하였다고 한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는 “코로네이숀 매스”를 이 대관식을 위해 작곡하고 연주한 곳으로 인해서 Coronation Church 라고도 한다.

캐슬 지역에 가면 중세의 정원이나 비밀 정원이 도시 위로 떠 있는 것 같고, 많은 건물들이 역사적인 건물로 보호된 것을 알리는 현판을 써서 붙여 놓고 있어, 역사와 보존을 중요시하는 정책이 엿보였다.

그리고 또 다른 명물은 터키의 유물인 온천이다. 1541년부터 1686년까지 비교적 짧은 통치 기간이었으나 그들이 남긴 온천은 부다페스트의 명물이 되었고 관광객들이 항상 붐빈다고 한다.

1854년에 시작해 1859년에 완공한 비잔티움/무리시 스타일로 지은 3,000명이 동시에 예배드릴 수 있는 거대한 유태교회당도 거의 300년 전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싶고 이런 역사적이고 무게있는 건물들을 배경으로, 유명 브랜드의 숍, 많은 커피숍과 산뜻하게 치장한 음식점들이나 밝은 모습에 생기가 넘치고 활기찬 많은 보행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오랫동안 공산치하에서 억압된 동구권에 와 있다는 것을 잊게 했다.

저녁 9시경 부다 페스트를 떠날때의 야경은 파리의 세너강이나 런던의 야경에 떨어지지않는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것이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는 여행을 약속해 주는 것 같았다.


2. 카류챠(Kalocsa), 헝가리(Hungary)

크루즈선의 다음 도착지는 16,000명의 인구를 가진 한적하고 조용한 칼류차였다. 첫 헝가리 왕인 스테벤에 의해 11세기에 세워졌는데 물과 늪지의 자연적인 조건 때문에 이곳은 중요한 요새로 발전했고, 14, 15세기에는 인구도 늘어나고 주요 행사나 정치 활동도 왕성한 도시로 주교가 있는 대교자 성당(cathedral)도 건축되는 등 황금 시기였다고 한다. 1602년에는 터키에 의해 마을이 화재로 완전히 소멸하였고, 그 후 터키인이 추방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재 건축되었으나 옛날의 그 화려했던 모습은 역사와 함께 사라졌으며 지금은 쓸쓸하고 생기가 없는 잠자고 있는 도시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바록형으로 지어진 대주교의 관저는 현재는 도서관 겸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데 약 100,000권의 장서가 비장 되어 있고 그중에 마틴 루터가 사용했던 소중한 성경책이 소장 되어있으며 그 성경책에는 마틴 루터가 직접 쓴 노트가 여기저기 표기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칼류챠는 채소와 과일로 알려져 있고, 특히 유명한 것은 파프리카(고추)의 재배다. 추수기가 되면 인근의 32개 마을에서 3,000여명이 파프리카 생산에 투입된다고 한다. 파프리카 라는 말 자체도 헝가리 어가 국제화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칼류차는 수백 년을 내려온 민속 예술로도 유명하다. 특이하고 밝은색으로 가구, 벽, 도자기 등에 이 지역의 특이한 패턴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꽃무늬로 수 놓은 앞치마와 웃 저고리 그리고 머리 밴드를 만들어서 쓰고, 판매하는 것이 헝가리의 민속촌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파프리카 빵을 만들어보고, 계란 페인트도 해 보고, 차다시 라고 하는 헝가리언 댄스와 성 요한 성당에서 바흐와 슈베르트의 음악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것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화려하고 무게가 있는 교회 안에서 듣는 음악은 역시 작곡가의 의도를 더 잘 이해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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