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紀行) 작가 : 강 순조 (Susie Kim)






   Vol-No : 08-32 Author : 강순조 (Susie Kim)
동유럽 크루즈 와 드라큘라의 발자취를 따라서: 전설인가, 진실인가? (3)

update 8/19/2016



5. 부커바(Vukovar), 크로아티아(Croatia)

*** 그리고 우리는 오시예크(Osijek)로 옮겨 크루즈 회사에서 미리 주선해서 초대한 한 가정의 안 주인과 같이 순 크로아티아식 점심 식사를 대접받았다.
식사 전에 라키야(브랜디)를 마시는데 어떤 과일로도 만들 수 있으나 제일 선호하는 것은 자두로 만든 것으로 45도의 알코올이 보통이고 두 번 증류한 것은 70도가 된다고 한다. 식사 전에 마시기에는 알코올 농도가 강하여 사양했더니, 자기들은 익숙하여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며 두어 잔을 계속하여 마신다.
전채 요리로 곱게 채쓴 양배추를 올리브유와 식초에 곁들어 먹고 나니 밥과 프라이팬에 볶은 호박을 곁들인 돼지고기에 파프리카를 넣어 만든 밑로프가 나왔고, 후식으로는 체리 스트루델이 코피와 같이 나오는 것이 우리와 비슷한 식생활 습관인것 같다.
여기의 주식도 헝가리와 같이 파프리카를 넣은 생선 스튜, 파프리카 소시지, 파프리카 사슴고기 등 이라고 한다.
집안을 둘러보니 우리나라의 중류 정도의 살림과 비슷해 보였고 화장실에는 수세식 변소에 좁은 샤워하는 곳이 한쪽에 있고 간이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으며, 크지 않은 정원에는 몇 개의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고, 꽃 나무들이 약간은 무질서하게 심어져 있으며 조그마한 강아지가 우리를 보고 반갑다고 짓고 뛰어 오르려고 하는 것이 안정된 중류층의 인상을 보여주었다.

6. 벨그라드(Belgrade), 서비아(Serbia)

오늘도 크루즈 배는 우리가 잠들고 있을 동안 서비아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시차도 어느 정도 조절이 되어 아침 일찍 해 뜨기 전 제일 윗층에 있는 솔라리움 덱에 죠깅하기 위하여 올라갔다.
일행중의 한 분의 말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부다페스트까지 약간 힘든 14시간의 비행시간이었는데 선상에서 다뉴브 강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값을 충분히 치렀다고 행복하다며 지나치는 풍경에 몇 번이나 감탄이 끝이지 않을 만큼 평화스럽고 아름다웠다. 잔잔한 물결이 찰랑거리는 강변 옆으로 펼쳐진 짙은 초록색의 숲과 부드럽게 굴곡이 진 언덕 위에 점점이 흩어진 빨간 지붕의 집들이 평화스럽게 펼쳐진 것은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하여 주며 동유럽 국가들의 수 천 년에 걸친 험한 역사를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부다페스트에서 시작한 우리의 배는 크로아티아를 거쳐 서비아에 미끄러지듯 조용하게 소리도 없이 들어와 있고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 커피 잔을 들고 덱에 올라오니 짙은 수목 넘어로 떠 오르는 동녘 하늘의 그 찬란한 태양을 보면서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오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집, 이른 새벽 등산길에서 보던 태평양 위로 솟아 오르던 해, 아프리카 사막에서 새벽에 덜 깬 눈을 비비고 랜드로버로 어둠을 헤치고 달려 파스텔 칼라의 하늘을 비집고 올라오든 둥근 해를 맞이했든 것, 마사츄세츠의 바닷가에서, 멕시코 리비에라 마야에서 팜 트리 사이 수평선 위로 떠 오르는 해를 보고 서로의 손을 잡고 감탄했든 태양, 겨울이면 나의 골프장의 1번 홀에서 온 하늘이 분홍색에서 붉은색으로 펴져나가면서 새로운 날을 찬양하듯 떠 오르든 태양 등 똑 같은 태양이고 평생 보아온 태양이지만 언제나 감격스럽고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그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서비아 역시 주위의 여러 국가들처럼 6세기에 스라브스(러시아,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가 정착했고, 중세의 찬란한 문화의 유산인 많은 사원과 교회는 오늘날 UNESCO에 의해 보존 되고있다.
터키의 점령시에는 이슬람을 받아들여 모슬렘이었으나 오늘날은 약 9백만 인구 대부분이 동방 정교 이고, 북쪽으로 가면 헝가리안 캐도릭이 많고, 동서쪽은 모슬렘이 주이다.

오토만 터키의 점령, 오스트리아의 통치, 발칸전쟁으로 영토확장과 대 학살, 서브, 크롯 과 슬로븐 왕국의 일원에서 공산당원 죠셉 티토가 집권한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의 일원이 되었다가 1980년 티토의 사망 후에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1999년 알바니아인의 폭동으로 나토의 심한 공격을 받았고, 2008년에는 코사보가 서비아에서 독립을 선포한것 등 끝없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2700년간의 벨그라드 역사에 도시가 완전히 파괴된 것이 44번 이나되고 6백만 명이 전쟁으로 사망했으나 언제나 불사조처럼 잿더미에서 일어섰고, 현재는 인구가 거의 2백만이다. 1840년 부터 서비아의 수도이고, 또한 다뉴브강과 사바강의 삼각지에 있으면서, 서비아의 중앙에 있어 편리한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벨그라드를 쟁탈하기 위한 수많은 전쟁이 끊임없이 있었으며 두 강의 삼각지에 위치한 칼레마지단(Kalemegdan) 요새에 올라가 보면 얼마나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었다. 전략상의 중요성 때문에 이 요새는 동 유럽의 역사상 제일 치열하게 또 제일 많이 쟁탈전에 시달렸던 곳이라고 한다.

도시는 화려하게 보이나 가까이서 보면 최근의 역사적인 사건들 때문에 건물들이 뼈대만 남아있는것을 볼 수있었고 총탄의 자국이나 깨어진 창문들 등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서부터 근대 유럽의 중요 도시의 면모를 서서히 갖추기 시작하고 있는 모습은 많은 쇼핑객과 밤낮으로 붐비는 인파가 말해 주고 있었다. 매년 경제 성장율은 약 2.5%며 2014년에 EU에 가입했다.

오후에 우리는 로얄 팔라스를 방문했다.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1920년에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가 있는 남서쪽의 언덕 위에 세워진 궁전은 1947년 군주 제도의 폐지로 그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이었든 티토의 거처가 되었다가 최근에는 국민 공산당 지도자 스로보단 밀로세비치(Slobodan Milosevic)의 사가로 쓰이다가 그가 실각하고 나서 다시 왕가로 넘어갔으며 아래층은 일반에게 열려있으나 윗층은 현재 왕족이 거처하고 있었다.

웅장한 입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중세기 서비안의 프레스코 화벽이 눈길을 끌었고 다이닝 룸의 타페스트리와 민속 예술로 단장된 천장은 화려함과 무게를 더 하여 주었고 많은 유명 화가의 그림 중에 내가 아는 이름은 젊은 남자를 그린 렘브란트뿐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티토가 사용했던 방들이 있었다. 여러개의 방중에 하나는 남자들의 스모커 룸이었는데 특별한 환기 장치로 담배 연기가 방안에 스며들지 않게 되어있었고 바로 옆의 방은 벽에 개울물이 흘러가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낙수 분수 같은 것이 있었는데 티토가 살든 당시 대화의 도청을 방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대화를 할때는 이 방에서 물을 틀어놓고 대화를 했다고 한다. 티토는 미국의 서부극을 좋아하여 자주 즐긴 실내 극장이 있었는데 방 중앙에는 몇 개의 의자가 놓여있고 방 뒷 쪽 한 가운데에 좀 높게 의자가 하나 따로 놓여 있었다. 티토는 여기에 앉아서 딴 사람들의 뒤에서 관람했다고 한다. 소련의 22번에 걸친 암살 실패가 있었다니 그의 노이로제를 상상할수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티토의 무덤 겸 기념관이 있는 티토 기념관으로 옮겼다. 세게 이차 대전 후 전쟁의 흙더미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연방정부를 설립한 독재자였으나 1980년 그의 사망시까지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무덤이 있는 뮤소리움에는 그의 탁월한 정치와 유산에 관심이 많은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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