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紀行) 작가 : 강 순조 (Susie Kim)






   Vol-No : 08-38 Author : 강순조 (Susie Kim)
동유럽 크루즈와 드라큘라의 발자취를 따라서: 전설인가, 진실인가? (8)

update 9/23/2016



10.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 루마니아 드라큘라의 행적을 쫓아서....

상인들과 지주들은 브래드 임패일러가 쓴 경제정책에 불만이 많았고 브래드는 자주 브라스보와 각 고을과 읍과 시타델을 공격하고 불 지르고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을 잡아 뾰족한 대창으로 몸을 항문에서 위로 꿰어 교회 옆이나 대로 가에 높이 매달아 놓아 브래드 임패일러 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포로들이 일찍 사망하면 창을 꽂은 사람도 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빠르게는 3일 늦게는 8일에 걸쳐 사망하게 했다고 한다. 다른 예를 들면, 마켓 가운데에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갈증을 달래기 위해 금으로 만든 컵이 우물가에 있으나 이러한 엄중한 처벌 때문에 누구도 훔쳐 갈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브래드 임패일러는1462년 터키의 침공을 받았을 때도 그의 잔인한 방법으로 포로들을 처벌했는데
변장한 군인들은 밤중에 터키군의 병영에 침입하여 병사들을 납치하여 와서 그들을 창으로 항문에서 부터 찔러 매달아 터키군이 통과할 길목에 높이 매달아 놓아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브래드 임패일러는 지역의 유리한 점을 이용해 왕위에 오르자마자 카르파티아 산맥 줄기인 아이스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절벽 위에 요새를 짖고 살았으나 1476년 브래드가 죽음으로서 요새는 버려졌고, 1888년 산사태로 요새는 강으로 휩쓸려 갔다

브랜 캐슬은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암벽 위에 13세기 오토만 제국의 침공에 대비하여 지은 요새이며 57개의 방이 있고 지금은 루마니아의 로얄 가족의 역사를 간직한 뮤지움이다. 드라큘라로 더 잘 알려진 왈라키아의 통치자인 브래드 태피스는 여기서 산 적은 없고 헝가리에 의해 몇 개월간 감옥살이를 했을 뿐이다. 한때에는 루마니아의 두 번째 왕인 퍼디난드 일세의 부인인 퀸 마리 (영국 퀸 빅토리아의 손녀딸)의 여름 별장이 되었고 트랜실바니아를 사랑하여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고 한다. 퀸 마리는 의지가 약한 남편 대신 모든 정치를 통괄했고 WW1때는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한 것도 여왕이었으며 왕과 다섯 자녀는 피난했으나 퀸 마리와 세 공주는 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고 1919년에는 파리의 평화 협상에 참석하여 영토가 확장된 루마니아의 인정을 위해 설득하여 세계의 승인을 받아냈다. 또한, 작가로서 간호사로서 루마니아가 사회주의로 바뀔 때까지 국민으로부터 제일 사랑받은 퀸이었다.
그녀가 사망하였을 때 그녀의 유언에 따라 심장은 그녀가 제일 사랑한 브랜캐슬에서 내려다 볼수 있는 정원 끝에 묻고 몸은 부카레스트로 옮겨 안장되었다고 한다.

11. 드라큘라의 출생지 시기소아라(Sighisoara)

사실 드라큘라는 명문의 가정에서 출생했다. 드라큘라(Dracula), 브래드 테피스는 드라큘 (Dracul)의 아들로 12세기 쌕손에 의해 시작된 트란실바니아의 타운인 시기소아라(Sighisoara)에서 1428년에 태어났다.

시기소아라는 트랜실바니아의 심장과 같은 곳이고 토지가 비옥하여 많은 생산품이 나오고, 독일 등 서구와의 교류로 경제적으로 번영된 지역이다. 부카레스트의 북쪽으로 300km에 있고 브라소브와 같이 12세기 독일 색손들이 이주하면서 건설되었으며 15-16세기에 최대의 번영을 하였다고 한다. 언덕 위에 평화롭고 그림같은 시기소아라는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 시기소아라는 장인 조합(Guild)이 있는 도시로서 각 조합의 명칭을 딴 9개의 탑이 있어 성곽의 출입과 방어의 역할을 했고, 대표적인 탑은 주 관문 역할을 하는 타운의 상징인 시계 탑으로 중앙 광장에 있는데 1300년에 건축했든 것이 화재로 파괴되고 1600년에 재건축했다고 한다.

화려한 교회, 장인들이 산 집들과 자갈 무늬가 깔린 골목길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지금도 남아있는 173개의 나무층계로 2개의 길을 연결한 지붕이 있는 층계와 걸어 다닐 수도 있게 넓게 쌓아 올린 성벽 등은 16세기의 보석이라고 부를 만큼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있었다.

그러나 관광 핵심점은 시계탑이 있는 광장이며 그 속에 드라큘라의 모델인 브래드 태피스의 생가를 보는 것이다. 아래층은 식당, 위층은 박물관으로 쓰여지고 있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의 교회 옆에는 Vlad Tepes, Vlad the Impale의 흉상이 있는데 턱이 뾰족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큰 매부리코에 눈이 찢어진 듯 옆으로 솟아있어 소설 속의 드라큘라와 정말 잘 어울렸다.

브래드 테피스의 아버지 브래드 드라큘(아버지의 이름은 드라큘(Dracul), 아들의 이름은 드라큘라 (Dracula는 드라큘라의 아들이란 뜻) 트란스실바니아의 군 통치자였는데 용의 집단(Order of Dragon)즉 드라곤 집단의 회원이었다. 십자군 때 만들어진 독일 기사단(Teutonic Knights)과 비슷한 이 집단은 카톨릭의 이익과 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군사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집단이었다. 헝가리의 왕 시그문드 1세와 친분이 좋았던 브래드 테비스의 아버지는 왕궁 안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나중에는 오토만 왕국에 대항하여 싸운 용감한 기사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용맹을 인정하여 드라쿨 명칭 (Dracul)이 드라곤 집단에 의해 주어졌다

(드라곤은 라틴어로 Draco임). 중세에는 드라곤은 독립적이고, 지도력, 지혜, 용맹을 상징하고, 성서적인 연관으로서는, 악마, 즉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뱀과 같은 드라곤으로 악을 함축해서 표현했다. 그러므로 루마니아 언어로 드라큘은 드라곤과 같이 악마로 상징된다. 더욱이 이 집단의 예식 복은 까만 망토(manteau) 위에 빨간 장신구를 달았었는데 이는 스토커에게 그의 소설에서 드라큘라 백작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영감을 주었고, 우리는 드라큘라 하면 까만 망토를 입고 크고 뾰족한 송곳니로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를 상상한다.

실제로 역사가들도 드라큘라를 잔인하고 피에 굶주린 폭군이었다고 묘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카레스트에 가면 한때 그가 살았든 집이 관광 명소이고 시기소아라 또한 유네스코의 문화유산보다도 드라큘라로 관광객이 붐비는 명소가 되었다.
선물 상점에 들어가면 브래드 테피스 얼굴의 티 셔트는 물론 드라큘라 가면, 드라큘라 모텔, 드라큘라 초콜렛 심지어는 드라큘라 콘돔 등 모든 것이 드라큘라이다.
이처럼 드라큘라의 발자취를 보려는 많은 관광객들이 브랜과 시기소아라로 많이 모이고 귀중한 관광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몇 일간 여행한 루마니아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시나 건축물이 많은 곳이고 저렴한 물가와 인구 밀도에 비하여 농지나 토지가 넓고 자연 자원도 풍부하여 잠재력이 커 보였다.


후기

여행은 책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직접 해보고, 직접 맛보며, 직접 체험함으로서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십 세기에 걸쳐 변천해온 그들의 역사를 현장에서 보고 느낄 때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생각한 유럽인이나, 공산주의의 획일주의의 통치하에서도 꺾어지거나 변형될 수 없는 민족적인 정신과 종교를 통해서 모든 슬픔과 어려움을 극복한 그들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면서 또 한번 나의 편견을 깨뜨릴수 있는 기회에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본 사람들은 국가의 부를 가름하는 GDP가 비교적 낮은데도 찌들리거나 불행해 보이지도 않고 구걸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으며 어느 나라를 가도 꽃을 사고팔며 창문에 심어진 꽃들을 볼 수있었든 것이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인 풍요함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재확인했다.
참고로 2015년 통계에 의한 GDP 헝가리 $14,375, 루마니아 $9,527, 불가리아 $7,502, 서비아 $5,671, 크로아티아 $14,783, 미국 $51,486, 대한민국 $25,023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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