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10-23   Author : 이 충시
11-4, 한민족의 무형유산 아리랑 의 지역별관찰, 유럽의 아리랑 독일편 (20) 관찰 (Scientifically Revealing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The Korean Korean Arirang in The German of Europe( 20)

newspaper update 6/15/2018



서두;
무르익은 봄의 꽃향기는 온 대지를 채우는 것 같습니다 몇 일전 뜬 눈으로 58년전의 갈림길에서 훈풍(薰風)의 만남의길이 트이려나 하는 기대감에, 밤을 지세면서 우리와 유사한 독일 생각에 이번에는 유럽의 독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아리랑 사랑을 고 윤이상(考 尹伊桑/Isang Yun) 작가를 중심으로 관찰하고자 하며, 유럽에서의 아리랑 관찰은 독일, 이태리를 중심으로 보겠으며 북부 유럽등에서도 활동이 많다고 보겠습니다

*한민족(韓民族)의 문화재인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전민요(口傳民謠/Oral folk song))이다 ,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전통낱말 순위중, 3번째 순위로 조사 되었고, 2012년 12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록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한민족 뿐만 아닌 세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있습니다. 11-1,편에서는 그유래를 , 2편,시대성 , 3편, 어원적(語源的/Etymological ) 4,지역별(地域別/Regional) 에서, 4-1 정선 아리랑, 4-2 진도 아리랑, 4-3밀양아리랑 그리고 4-4 김산, 4-5.미국분인 헐버트 박사와 아리랑 연계 그리고,4-6 Hague밀사, 4-7미국편, 4-8미국의종편,4-9 러시아1편, 4-10 제 2편, 4-11 제3편,4-12, 4-13, 4-14 몽골(蒙古/Mongol) 4-15(I) , 4-16(II)고려인(高麗人)의 아리랑로드, 4-17북한의 아리랑, 4-18 한국전과 아리랑, 판문점 회담과 아리랑4-19, 유럽의 아리랑 독일편4-20 관찰 입니다.


11-4-20 유럽에서의 아리랑 관찰( Revealing Aring in the Europe)



Fig.1.은 2017년 항가리 Budapest 세계수영 선수권 대회의 페막식에 초청된 소향이 사슴을 연상시키는 높은 무대위에 올라 “홀로 아리랑”을 불러 관객들의 열열한 박수를 받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래에는 여러명의 무용수들이 함께 조형물 아래에는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군무를 펼쳐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특유의 강렬한 가창력과 함께 무용수들의 군무가 섞이며 환상적인 무대를 펼친 소향은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이번 무대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FINA)에서 역대 최초로 가수를 직접 초청한 무대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 FINA 관계자들은, 소향의 무대를 본 후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된 이번 소향의 폐막식 무대는 SNS와 유튜브를 통해 화제가 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적인 노래를 알린 만큼 글로벌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겁다.

한편 소향은 최근 MBC 복면가왕에 ‘흥부자댁’으로 출연해 독보적인 노래 솜씨와 탁월할 리듬감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대표적인 *CCM 가수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와 같은 감동적인 찬양으로 한국 교회 안에서 많은 신앙적 감화를 끼친 소향이 지난 달 30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수영 선수권대회 폐막식 무대에 올라 ‘홀로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이 전세계로 중계 되었습니다.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적인 스포츠 제전이 모두 ‘루시퍼(*Lucifer)’를 찬양하기 위한 제전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것이고, 뿔달린 짐승을 탄 소향이 그를 추앙하는 무리들 앞에서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만장처럼 장식된 무대 뒤로 사라지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며, ‘짐승을 탄 음녀’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에 한국을 대표하는 CCM 가수 소향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 보겠습니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현대 기독교 음악. *Lucife:지옥의왕 상징

20-1아리랑과 윤이상의 생애(아리랑 & 尹伊桑 生涯/Arirang and Isang Yun’s Life)

뮌헨 올림픽때 한국선수단 입장곡을 윤이상 작가가 아리랑을 변형 작곡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선율이 정말 아름다운 곡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소개하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어 싣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 합니다. 1917년 9월17일 출생 하고 1995년 11월 4일 사망 하셨습니다. 1968년 옥중 작곡한 오페라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으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1-1.어린시절의 꿈: 윤이상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윤기현(尹基鉉)과 김순달(金順達)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 Fig.2.의 윤이상은 감수성이 풍부한 유소년시절 통영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다채로운 전통문화(유교적인 제사의식, 선비들의 풍류, 유랑극단의 공연, 부유한 친척의 잔치 때마다 들었던 기생들의 노래와 전통악기 연주, 통영 오광대놀이, 무당의 굿, 석가탄신일 미륵산의 연등제, 승려들의 예불소리와 범종소리, 정월 대보름의 다리밟기와 연날리기, 5월 단오제, 어부들의 남도창 등)와 새로이 유입되는 신문화를 온몸으로 호흡하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다섯 살 때부터 3년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윤이상은 여덟 살에 유럽식 교육체계의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여기서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신문화를 체험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명확한 음계의 유럽 노래는 무엇보다도 어린 윤이상의 마음을 끌었다.

그는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고, 풍금반주에 맞추어 잘 부르는 창가(唱歌)의 수재였고, 창의력이 뛰어 났다고 합니다. 집 근처의 교회에서 불려지던 찬송가도 윤이상이 어린시절 경험한 서양음악의 하나였다.
그는 열세 살 때에 바이올린과 기타를 배우고, 연주하며 직접 선율도 써본다. 이때 그가 만든 선율이 통영의 무성영화를 상영하던 영화관의 막간에 행해지는 음악 연주회에서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곡 연주되었고, 우연히 자신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듣고 작곡가가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1-2.음악가로의 꿈 실행:
보통학교를 졸업한 윤이상은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통영협성상업학교에 진학하여 2년간 수료한다. 그러나 그는 음악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일곱 살에 서울로 올라간다. 그는 2년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군악대 출신의 한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화성학을 공부한다. 또한 국립도서관에 소장 된 총보를 이용하여 독학으로 고전음악과 R. 슈트라우스, 힌데미트 등의 음악도 공부 했습니다.

1935년 다시 통영으로 내려온 윤이상은 상업학교에 진학할 경우 음악을 공부해도 좋다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는 일본 오사카에 있는 상업학교에 입학하고, 오사카 음악학원에 다니며 작곡과 음악이론 및 첼로를 공부한다.

오사카에서 공부하는 동안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사는 지역에 거주하면서 그는 여기서 억압 받는 동포들의 삶을 보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의식에 눈을 뜨게 된다. 한국으로 귀국한 윤이상은 1937년 민족 의식(意識)이 강한 통영 산양면의 화양학원(지금의 화양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이 시기에 그는 오페라의 문헌을 연구하고 작곡을 계속하며 첫 동요집을 출판한다. 1939년 그는 다시 일본 도쿄로 건너가 프랑스의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유학한 이케노우치 도모치로에게서 대위법과 작곡을 공부 했습니다.

1-3. 항일 투쟁 운동: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될 기운이 보이자 고향으로 돌아온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그는 징용되어 미곡창고에서 일하게 된다. 반면에 그는 지하그룹을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도모하다 1944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당하고 두 달간의 감옥생활을 한다. 석방 후 그는 다시 저항활동을 도모했고, 이를 알게 된 일본경찰을 피해 서울로 도피한다. 결핵으로 쓰러져 경성제대(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던 그는 그곳에서 해방을 맞이 했습니다

1-4.고향에서의 많은 활동(1945-1955):
1945년 해방후 귀향(歸鄕)하여 통영, 부산지역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며 다수의 초등학교 교가를 작곡하고, 유치진 극본 ‘처용의 노래’, 이은상 시’낙동강’을 작곡함. 1953년 동요작가인 김영일과 함께 70여편의 동요를 작곡하여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 까지, 새음악 문교부인정 책과, 전시초등학교 노래 ’소년 기마대’를 펴냄 또한 1955-1969년에는 파리에 유학하여 파리음악원에서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웠고 1959년에는 Berlin음대를 졸업했습니다. 일약 국제적 명성을 얻게된것은 ‘남서독일 방송 교향악단’에 의해 초연의 성공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1-5.옥중의 작품활동:
이후 미국 및 북한으로의 활동 관계로 6월17일 한국의 정보요원에 의해 서울로 납치됨.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윤이상은 부인 과 함께 기소되어 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음. 그의 부인은 7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집행유예로 석방. 윤이상은 1963년 3월 13일의 제2심에서 15년으로, 1969년 1월의 제3심에서는 10년으로 감형.
수감 중이던 1967년 10월에 작곡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윤이상은 오페라 <나비부인>을 2월 5일에 완성. 건강이 악화된 윤이상은 병원으로 이송됨. 이곳에서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율Riul>과 플루트와 오보에를 위한 <영상Image>를 작곡 하랄드 쿤츠, 죠르지 리케티, 한스 베르너 헨체,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지그프리드 팔름, 이고르 스트라빈 스키, 오토 클렘페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161명에 달하는 세계적 예술가 및 그의 동료 그리고 독일정부의 항의 및 노력으로 윤이상은 석방되고, 2월 말에 베를린으로 돌아옴. 2월23일에는 그의 2부작 오페라 <류퉁의 꿈(1965)>, <나비부인(1967/68)>이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초연 되었습니다.

1994년 9월 ‘윤이상 음악축제’가 ‘예음재단’ 주최로 서울, 광주, 부산에서 개최, 『나의 길, 나의 음악: 윤이상의 음악 미학과 철학』(윤이상/볼프강 슈파러 저)이 정교철, 양인정 번역으로 도서출판 ‘HICE’에서 간행됨. 마지막 작품, 교향시 <화염 속의 천사>와 소프라노 여성합창과 독주악기가 수반되는 <에필로그 Epilog> 를 77세 생일인 9월 17일에 완성. 1995년 2월 ‘독일 문화원’ 본부가 선정한 ‘괴테 메달’ 수상자로 선정. 5월 일본 동경에서 그의 마지막 작품인 교향시 <화염 속의 천사 Engel in Flammen>와 <에필로그 Epilog>가 초연됨. 11월3일 16시20분(현지시간). 베를린의 발트 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 베를린시 가토우 지역 공동묘지에 안장 되셨습니다.

em>후기: 유럽 지역 작가들의 대부분은 애술의 본고장인 독일과 이태리에서 많은 수학을 했고 여기에 동양적(東洋的)인 예술문화(藝術文化)를 접목 함으로 색다른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이 많아 본문에서는 다 소개 할 수 없어 다음편에서 아리랑 사랑 및 통일염원(統一念願)이 담긴 작품을 많이 탐방(探訪)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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