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10-27   Author : 이 충시
11-4, 한민족의 무형유산 아리랑 의 지역별관찰, 유럽의 아리랑 독일 제2편 (21) 관찰 ((Scientifically Revealing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The Korean Arirang in The German of Europe 2nd Part( 21)

newspaper update 7/20/2018



서두;
독일 아리랑의 제2편은 이번 2018 Russia world cup에서 세계1인자인 독일팀을 감히 2:0으로 승리한 기적도 있었고, 그리고 2번째는 우리민요 아리랑의 언저리에 얽힌 슬픈사연의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 및 2대통령과의 만남 이야기와, 한국민의 후손(後孫/ posterity)에 보내는 슬픈 이야기(Such a sad story)에서 경제적으로도 국력(國力)으로도 자랑스러움을 아리랑의 저서(著書)와 아리랑의 Musical 행사로 그 Message 를 전하기 위한 관찰을 하고자 합니다

*한민족(韓民族)의 문화재인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전민요(口傳民謠/Oral folk song))이다 ,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전통낱말 순위중, 3번째 순위로 조사 되었고, 2012년 12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록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한민족 뿐만 아닌 세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있습니다. 11-1, 편에서는 그 유래를 , 2편, 시대성 , 3편, 어원적(語源的/Etymological), 4-지역별(地域別/Regional) 에서, 4-1 정선 아리랑, 4-2 진도 아리랑, 4-3 밀양아리랑 그리고 4-4 김산, 4-5 미국분인 헐버트 박사와 아리랑 연계 그리고 4-6 Hague밀사, 4-7 미국편, 4-8 미국의 종편, 4-9 러시아 1편, 4-10 제 2편, 4-11 제3편, 4-12, 4-13, 4-14 몽골(蒙古/Mongol) 4-15(I) , 4-16(II)고려인(高麗人)의 아리랑로드, 4-17 북한의 아리랑, 4-18 한국전과 아리랑, 판문점 회담과 아리랑, 4-19 유럽의 아리랑 독일편 4-20 & 21 관찰 입니다.



21-1-1. 독일 아리랑에 가려진 이야기의 관찰(獨逸 아리랑 觀察/ Revealing Arirang in the German )



필자가 독일에서의 아리랑 관련 사실들을 살피는 중에 ‘독일 아리랑’이란책과,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그린 Musical 배경에서의 잊혀진 이야기를 관찰 하고자 합니다.
먼저 2015년에 출간한 저자 김용출의 책에서 70년데에 독일로 간 2만 여명의 파견광부와 간호사는 ‘한강의 기적’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한에 맺힌 그리고 경제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한(限) 서린 50년을 밝히는 내용 이였습니다.


1-2. 독일 아리랑에서 파견 광부와 간호사의 이야기(獨逸 派遣 鑛夫 & 看護師 背景/Survey of Dispatched Miners and Nurses in Germany)


독일 아리랑은 Fig.1.에서와 같이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 행사 중 처음 열리는아리랑 예술 행사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첫 주역으로서, 독일 한인사회의 근간이자 다문화사회의 모델이 되기까지 쉼없이 달려온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삶을 재조명해보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기획된 작품입니다.

한국전쟁 후 황폐화된 1960년대 우리 민족사를 다룬 이 작품은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민간 국제교류 공모에 선정돼 독일 베를린 현지에서 찬사 속에 초연했으며, 공연에는 가수 윤복희, 배우 김진태 등이 특별 출연했습니다.

*1960년대의 가난한 한국을 기억 한다:.

필자도 군복무를 끝내고 바로 공무원이 되어 개발운동에 함께 했었기에 실감 합니다. 그때 한국은 Phillipine을 부러워 했으며 잘 사는 비결을 파악 하고, 쌀 생산을 배증 하기위한 아시아의 유일한 쌀연구소에 기술 연수(硏修)도 보냈다. Parkistan으로 제철(製鐵) Know How를 물으려 보냈고, 자원이 없으니 시골 처녀들의 긴 머리를 잘라 , 외국에 내다 팔고(필자가 70녀도에 미국시장에 한국 물품을 찾으니 유일한 한국산이였습니다), 별 수익이 없는 광물과 오징어, 명태 등으로 외화 벌이를 꾸려 갔었습니다.
그 시대는 1963년 부터 대대적인 인적 자원의 해외 진출을 추진 할 수 밝에 없었는데, 그렇게 함으로 그때의 1964년 국민 소득, $100을 , 1965년엔 $1억을 달성 할 수 있었고, Fig.2..에서 보듯이 1997년 IMF의 고난도 극복하고 현재는 $2만 9,000선에 있게 되기까지에는 다음과 같은 피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목숨건 지하 3,000m 및 궂은 일은 다 맡았던 간호사분들:
1963년 부터 독일과의 협상으로 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명이 신청했고, 상당수는 대졸도 포함됬고 이들은 지하 1,000m – 3,000m의 사경에서 목숨을건 일이였고 1m를 파는데 4-5 마르크(Mark)를 지불 했다고 합니다. 간호사들도 궂은 일은 다 맡아서, 거즈로 사채를 닭았으나 성실성과 실력을 인정 받아2,000명 이상을 초빙 했던 가난한 나라의 설움을 몸에 담고 고생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3. 전 박정희 대통령의 격려방문(大統領 激勵 訪問/ President’s encouragement visit )

1964년 12월 한국의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루르 탄광지대의 함보른 광산을 방문했는데, 현지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자 500여 명의 참석자들은 눈물바다가 됐다고 합니다 .
단상에 올라간 박 전 대통령은 준비한 원고를 옆으로 밀쳤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게 무슨 꼴입니까.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 만큼은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한편 짙은 오렌지색 두르마기를 입은 육영수 여사는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손수건으로 훔쳤고. 육여사(陸女士)의 눈물은 독일 광부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우리 광부들은 목청을 다 해 이역만리(異域 萬里)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전 박대통령은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는 한국에서 가져간 ‘파고다’ 담배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독일 탄광회사 대표로 작업부장인 더트 호르스트씨는 환영인사를 통해서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이곳을 찾아준 이 역사적인 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 광부들의 근면과 규율을 높이 칭찬했다고 합니다. 이어 우리 광부들을 격려하는 연설에 나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러분들의 기술은 고국에 돌아갔을 때, 재건계획에 크게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고 “될 수 있는 한 많이 배우라”고 말했다. 인내와 노력이 Fig.2.에서와 같은 소위 한강의 기적을 갖어 올수 있었다고 보아지며 일부 언론에도 그렇게 보도 됐습니다.

감동적이다! 영화의 소재로도 모자람이 없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일들을 찾아간 이가 가장 높은 지위의 현직 대통령이라니. 더군다나 대통령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눈물을 글성이며 격려했다고 합니다.
그후 박근혜 대통령이 50년 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4년 독일 방문을 연상시키는 독일 국빈방문을 마쳤는데,. 방문한 곳도,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해 ‘박정희 향수 마케팅’ 이라는 말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 마치 두 대통령이 동시에 독일을 국빈방문한 듯한 보도(報道)가 연일 지면과 방송을 장식했다고 일부 언론은 기록 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자료는 국내외 의 언론 보도에 기초함..


1-4. 아리랑의 후손 한국민의 각오(韓國民 覺悟/To be Determined in our Heart).

독일로간 광부와 간호사는 1960년대의 서글픈 우리의 역사이자 우리의 모습임에 틀림 없다고 보겠습니다.
. 1966-76년 까지 독일에서 보내온 송금은 년간 $ 5천만으로 이들의 봉급을 담보로 하여 독일정부로 부터 차관 $3천만(1억 4천 마르크/Mark)의 차관을 받아, 미국의 차관 없이도 힘차게 산업화의 길로 질주 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도, 한국의 가슴 아팠던 사연을.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과거 그 어렵던 시절, 무시(無視)와 굴욕(屈辱)을 당연히 받아들였고 막연한 분노를 품지 않았다고 보겠습니다. 1960년대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의 하나로, 120여 나라중 국민소득이 $76로 세계 119위였다. 내일을 준비해 왔으며 후손들을 위해 희생정신을 마다 하지않고, 당연시 받아들였슴을 후예들은 꼭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후기: 다음편에서 필자는 아리랑 사랑에 통일염원(統一念願)이 담긴 내용과 독일인 아리랑 가수등을 추가로 살피고, 이태리에서 동양적(東洋的)인 예술문화(藝術文化)를 접목한 작품을 탐방(探訪) 하고자 합니다

Views: 126   

contact info : leech@thegrapevinetimes.com







ADVERTISEMENT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

               
    자동차,구인,구직,부동산,사고팔고 CLASSIF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