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10-31   Author : 이 충시
11-4, 한민족의 무형유산 아리랑 의 지역별관찰, 유럽의 아리랑 독일 제3편 (21) 관찰 (Scientifically Revealing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The Korean Arirang in The German of Europe 3rd Part( 22)

newspaper update 8/17/2018



서두;
독일 아리랑의 제3편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가수중 아리랑에 매혹(魅惑/Fascinating)되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가수와 또한 유롭에서 각광(脚光/Highlight) 받는 작가나 가수들을 발굴하고 곁들어, 아리랑의 얘수(哀愁/Sadness)와 희망의 뜻을 따라 근래 이슈가되고 있는 한국의 남과북의 통일 관계를 동서독, 통일의 발자국에서 비교 관찰 해보고자 합니다
*한민족(韓民族)의 문화재인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전민요(口傳民謠/Oral folk song))이다 ,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전통낱말 순위중, 3번째 순위로 조사 되었고, 2012년 12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록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한민족 뿐만 아닌 세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있습니다. 11-1,편에서는 그유래를 , 2편,시대성 , 3편, 어원적(語源的/Etymological ) 4,지역별(地域別/Regional) 에서, 4-1 정선 아리랑, 4-2 진도 아리랑, 4-3밀양아리랑 그리고 4-4 김산, 4-5.미국분인 헐버트 박사와 아리랑 연계 그리고,4-6 Hague밀사, 4-7미국편, 4-8미국의종편,4-9 러시아1편, 4-10 제 2편, 4-11 제3편,4-12, 4-13, 4-14 몽골(蒙古/Mongol) 4-15(I) , 4-16(II)고려인(高麗人)의 아리랑로드, 4-17북한의 아리랑, 4-18 한국전과 아리랑, 판문점 회담과 아리랑4-19 ,유럽의 아리랑 독일편4-20, 21 & 22 의 관찰입니다.


22-1-1. 독일에서 아리랑에 인연을 갖은 가수들의 관찰(獨逸 아리랑歌手 觀察/ Revealing Arirang Singer in the German )


독일에는 한국음악에 관심이 있는 가수가 여러명 있으나 그중 아리랑에 매혹 된 로미나(Romina Alexandra Follinus)를 대표적으로 보겠으며, 뿐만 아니라 한국 트로트에도 푹 빠진 푸른 눈의 독일 미녀, 로미나가 아리랑TV의 ‘ Heart to Heart’에 출연 하였으며, 그녀의 인생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를 좋아 하며, 동양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독일 소녀로 그가 한국 트로트 가수를 꿈꾸며 한국에 정착한지 벌써 7년째로. 로미나는 ‘불후의 명곡’ ‘전국 노래자랑’ 등 여러 노래 프로그램에 출연해 트로트를 훌륭하게 소화하여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는 K-POP과 달리, 트로트는 가사에 삶의 애환(哀歡/Sadness)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거든요.“ 그녀는 트로트의 매력에 대한 질문에 가사를 최고로 꼽았으며, 유창한 한국어 발음실력은 물론, 애절한 감정을 살려 가사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실제로 한국인 이상의 ‘한’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로미나는 가수 이미자와 몇 년째 이어오고 있는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그녀는 KBS 가요무대에서 이미자의 ’아씨‘를 불렀는데, 이미자 선생님이 무대를 보고 직접 제게 연락을 해왔어요. 선생님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부르는 자기의 노래가 맘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2014년 이미자 55주년 전국투어 콘서트에 처음 초대받은 이후로, 약 50여회의 무대에서 함께했으며, 최근에는 뛰어난, 매력을 살린 유튜브 채널까지 오픈하며 한국의 트로트를 널리 알리고 있다는데. 지난번 에서는 한국을 사랑하는 아리랑과 트로트 전도사가 된 로미나와 함께 했다 합니다. Ref: Arirang TV

1-2. 베루린의 아리랑 찬양대(韓國 讚揚臺/Korean Choir in Berlin)


Arirang;
Arirang, Arirang, Arariyo,
I cross the Arirang Pass
He who has left me
Will not go ten Li *
Before he hurts his feet. .

* (Of length 1 Li = 4 km)

한국 음악가 이원수 (Lee Won-Su)는 1924년 일본 점령기에 “고향의 봄(Spring in the Homeland)”을 작곡했다. 유럽 음악을 모방 할 당시 유행했던 것처럼 노래는 다소 ‘유럽 적’으로 들립니다. 점령 자들에 대한 시위 노래이며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원초적인 노래이다. 본문은 봄에 ‘아름다운 고향’의 기억과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이민했는지 또는 한국에 머물렀던지 그 당시 느꼈던 향수( 鄕愁)를 묘사합니다.

주로 밀양 아리랑을 부르나, 왈즈(Waltz)와 비슷한 경쾌한 노래로 변형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및 그 후의 분단의 여파로, 비교 전래된 노래가 한국의 학교 노래로 인도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콘서트 합창단 베를린의 대부분의 멤버는 이 시기와 그 주변에서 이루어졌으며, 합창단은 주로 60년대에 한국 여성들로 구성됩니다. 대부분은 1960년대에 경제 이민자로 독일에 왔고, 전후( 戰後) 한국의 극심한 빈곤을 피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였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부족한 직업이었습니다. 2002년에는 일곱 명의 여성이 합창단을 창설했는데 부분적으로는 가족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합창단은 꾸준히 성장해 왔으며 2005년까지는 합창단에 남아있는 20명의 멤버가되었다고 합니다.


1-3. 신해철의 독일 월드컵 아리랑(German World Cup Arirang Song by Haechul Shin)

신해철은 넥스트와 함께 ‘Go For The Final’의 타이틀곡 ‘돌격! 아리랑’을 불렀다.
‘돌격! 아리랑’은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신해철이 발표했던 ‘Into The Arena’의 샤우팅 부분을 참조하여 탄생한 곡. 윤도현의 ‘애국가’ 시작부에서 들을 수 있는 우렁찬 목소리의 ‘대~한민국’ 구호는 윤도현이 아닌 ‘Into The Arena’에 실린 신해철의 목소리다. ‘Into The Arena’는 지금까지도 각종 광고 등에 무수히 샘플링 되거나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신해철의 ‘돌격! 아리랑’은 환희(歡喜)의 순간, 기쁨의 순간은 물론이거니와 고통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에도 언제나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아리랑의 한의 정서를 담는 데에 주력했다. 신해철은 지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의 폐막식곡으로 이미 ‘아리랑’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외에 관련이 많은 윤복희 가수 및 서해성 작가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2. 아리랑의 나라, 남북한과 독일의 통일(獨逸 統一, 南北韓 比較/The Unification Condition Comparing)

제2차 세계대전중이던 1945년, 독일은 서독쪽에 연합국의 나라, 미국, 영국, 프랑스가 그리고 동독 소련군이 점령하고 일부는 폴란드가 일부영토(East Prussia and Slajien)를 차지 한후, 서독쪽은 서독이 생겼고, 동부는 독일 민주공화국이 생겼다. 분단의 목적은 전쟁재발문제와 영토관리 문제로 분리됐다.

침략국인 일본은 일본이, 그리고 피해국인 한반도의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중국과 소련이 관여 하게 되었다. *유롭의 불란서와 폴란드는 피해국으로 가해국을 지배하고, 영토의 일부도 소유 한점이 한국과 일본 관계에서 비교된다고 보겠습니다.


2-1. 동독과 서독의 통일(The Unification): 가해국으로 국민의 목숨과 토지(동 프로이센과 슬래지엔)을 포란드에 잃고, 잃은 영토의 국민 1,500만명이 추방됐고, 2백만 여성이 강간 당하고, 남은 영토와 Berlin은 4개 연합국이 점령 분활 했다. 1949년 5월 23일, 서독은 Born을 수도로 하고 Berlin도 동,서로 분리 하여 동독은 동베루린을 수도로 하여 독립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서독의 부강과 동독의 경제력 차이로 상호체제 보호를 위해 Fig.3와 같이 1961년 장벽을 쌓았다.

1989년 5월 2일-8월 23일 항가리가 독일접경을 개방 하자, 동독인 수천이 서독으로 탈출했고, 이로 인해 동독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동독 당국은 11월에 뜻밖의 국경개방조치를 단행했다.
1990년 9월 12일 점령 4개국이 항복문서에서 권리를 폐기하고 완전주권을 돌려줌으로 1990년 10월 3일 동독의 5개주가 독일연방 공화국에 귀속됨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2-2. 동서독에서 본 받을점(For the Imitation Point): 독일은 평화적 통일을 이룩했다. 이는 1995년 5월 라이프치히 월요데모의 진원지였던 니콜라이 교회의 시위 배경을 살펴보면, 주도세력이 기독교 신자들로서, 평화주의를 신봉 하였으며,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평화예배를 마친 후 평화로운 마음으로 거리로 나갔기 때문에 평화적 시위의 의지가 강했다.

교인들은 진압경찰에 장미꽃을 가져다 주는가 하면 , 양손에 촛불을 들고 침묵을 지키면서, 질서정연 하게 시위를 벌였고, 폭력사연의 구실을 주지 않았으며, 시위중에 폭력반대 구호를 하기도 했다 합니다. 이 교회의 예배와 침묵시위는, 1982년 부터 시작 되었으며 1989년 동독의 시민혁명은 교회의 주축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해 5월에는 부정선거의 독재정권을 저항하기 시작하자 그 인원은 100명에서 500명으로 늘어 났다고 합니다.

2-3. 동서독과 한반도의 다른점(差異点/The Difference): 그러나 한반도는 6.25를 통한 동족살상(同族殺傷)의 전쟁을 치루었기 때문에, 적대 및 불신이 강력이 남아 있고, 동독인들은 1919년에서 1933년 까지에 민주주의를 경험했으며, 바깥 세계와의 정보통제(情報統制)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상대적 이해가 가능했다고 보겠습니다. 남과 북은 이점을 연구해야 한다고 사료 되었으며, 아리랑 관찰에 겻들여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달에 계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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