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NE 과학자 협의회장 이 충시 박사




   Vol-No : 10-35   Author : 이 충시
11-4, 한민족의 무형유산 아리랑 의 지역별관찰, 유럽의 아리랑 독일 제4편 (23) 관찰 (Scientifically Revealing Thousands of Years of Korean Cultural Secrets. The Korean Arirang in The German of Europe 4th Part( 23)

newspaper update 9/14/2018



서두;
독일 아리랑의 제4편은 요사이 남북의 정상이 상면(相面) 하려는 즈음에, 아리랑의 나라 한국과 유사한 조건에서도 통일을 이룬 독일과, 비교 관찰하여 그 배울점과 가능성을 관찰 하고자 합니다. 한족(韓民族)의 문화재인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전민요(口傳民謠/Oral folk song))이다. 세계에 알려진 한국의 전통낱말 순위중, 3번째 순위로 조사되었고, 2012년 12월에 세계무형유산으로 UNESCO에 등록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한민족 뿐만 아닌 세계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고 있습니다. 11-1편에서는 그 유래를 , 2편-시대성 , 3편-어원적(語源的/Etymological ) 4-지역별(地域別/Regional) 에서, 4-1 정선 아리랑, 4-2 진도 아리랑, 4-3 밀양 아리랑 그리고 4-4 김산, 4-5. 미국분인 헐버트 박사와 아리랑 연계 그리고, 4-6 Hague 밀사, 4-7미국편, 4-8 미국의종편, 4-9 러시아1편, 4-10 제 2편, 4-11 제3편, 4-12, 4-13, 4-14 몽골(蒙古/Mongol) 4-15(I) , 4-16(II)고려인(高麗人)의 아리랑로드, 4-17 북한의 아리랑, 4-18 한국전과 아리랑, 판문점 회담과 아리랑 4-19 유럽의 아리랑 독일편4-20, 21, 22 & 23의 관찰 입니다.

23-1.. 아리랑의 나라 한국과 유사한 독일에서의 통일 비교관찰(韓國 & 獨逸 比較觀察/ Revealing the Unification between Arirang Korea & German )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로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언제쯤 통일을 이룰 것인가의 염원이 새겨진 한돌 작사, 작곡의 소향 가수에 의한 한(限)서린 노래라고 하겠습니다.

2. 남북한과 동서독의 분리 비교(南北韓, 東西獨 分離比較/Comparing South & North Korea and East & West Germany for How Divided)

2-1. 남한과 북한 제2차 전쟁에서 미국의 제2차 원폭을 받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1945년 8.15를 맞고, 미국 군정 3년이 지난고 2년째인 1950년, 북한 공산군이 조용한 나라의 새벽녁을 뚫고 남침 함으로 시작되었으며, 이때 공산군의 침략행동의 즉각 중지와 38선까지의 철수를 경고하였으나 소련제 Tank를 앞세운 인민군을, 맞아 무방비의 상태의 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계속 낙동강 주변까지 남하하여 1950년에서 1953년 까지 동족살상을 하게되는 전쟁의 잿더미속으로 빠져 들었으며 금년으로 58년째를 맞았습니다.
2-2. 동독과 서독: 독일은 1945년 5월 8일 연합군에 패배 함으로써 1990년 10월 3일까지 45년간의 분단국이 되었습니다. 분단시대는 영국, 미국, 불란서 및 소련의 4분활의 시대가 있었고, 서독쪽은 본(Born)을 수도로 하고, 독일연방 공화국이 설립되고, 동독쪽은 독일민주공화국이 세워졌다.
동독과 서독이 1961년에 장벽을 쌓았으나 1990년 통일이 되었으며, 여기에서 당연히 패전국 일본을 한국, 러시아 ,중국, 미국 4개국이 지배 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침략당한 당사국인 한국을 분활하여 지배 한일은 같은 입장의 피해국인, 불란서와 같은 입장에 비교해서 한국이 약소국의 처우로 보였습니다.

3.주변국의 영향력(주변국 영향/The Influence of Neighbour Countries)

3-1. 남한과 북한: 이때 즉각 UN안전보장 이사회는 즉시로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다행이 이회의에 공산국가의 불참으로 거부권행사가 없어, 토의한 결과 북한의 군사행동을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적 행위로서 규정하고, 한국 방위를 위한 6.25전쟁 당시 UN참전국은 1951년 초까지 총 16개국이었다. 군대파견을 신청한 국가 21개국 중 실제로 파병을 한 16개 국가의 분포는 미국, 캐나다 북미 2개국, 콜럼비아 남미 1개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아시아 4개국, 남아공화국,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2개국, 영국,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베르그, 네덜란드, 터키 유럽 7개국이다.

이들 참전국들은 유엔이 요구하는 최소규모인 1개 대대 병력(약 1,200명) 이상을 파견하였다. 주요 참전병력은 1953년을 기준으로 영국 약 1만 4,200명, 캐나다 약 6,100여 명, 터키 약 5,500여 명, 호주 2,200여명 등이다. 1953년까지 한국전에 참여한 연합군은 미국을 제외하고 총 3만9천여명에 이르며, 미국을 포함할 경우 총 34만 1천여명에 이른다.
직접 군대 파견 16국이고, 인도, 스웨덴 등 의료지원국인 5개국, 일본, 베트남 & 헝가리 등 물자지원을한 국가 40개국과 북한, 소련 및 중국 3개국 총 62개국으로 추산(推算) 합니다.

3-2. 독일의 참전국: 독일은 미국, 영국, 불란서 및 소련이 나누어서 통일 전까지 지배했으며 폴란드가 영토를 되찾은 일이 비중이 크고 서독 동독을 합쳐서 보아지며 잃어버린 영토는 동쪽의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을 폴란드가 점령 한후, 주민인 독일인 800만명을 추방했다. 나머지 지역은 소련이 점령 한후, 동독은 독일 민주공화국이 세워졌다.

4. 통일의 준비 상태 관찰(統一準備 狀態 觀察/Revealing Process of Two Countries):

4-1. 장벽이 무너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독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서독의 수상 헬무트 콜(Helmut Hohl)이 이런 동독 사태를 처리하는 것은 그의 수상 경력의 전환점이 되었다. 대부분의 서독인들과 마찬가지로 콜 역시 처음에는 1989년 사회주의자 연합당이 1989년 후반에 무너졌어도 무관심했다. 하지만 그는 곧 독일의 통일을 이뤄내야하는 헌법적 의무를 받아들여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동독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역사적인 정치적 변화를 이용하며 콜은 자유 민주당이나 다른 서부 동맹국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독일과 유럽의 분열을 이겨내기”라는 계획을 제시했다. 1990년 2월 그는 소련이 독일 통일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란 확답을 듣기 위해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를 방문한다. 한 달 후, 동독의 민주적 사회주의 당은 서독의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CDU:Christian Democratic Union)의 동독 자매당들에게 큰 패배를 당하고 이는 빠른 통일에 초석이 된다. 독일 연방 은행 총재카를 오토 폴(Karl Otto Pöhl)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콜은 임금, 이자, 대출에 있어 서, 동 마르크에 1:1 환율을 적용했다. 결과론적으로 이 제도는 새 연방 주들의 회사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결국 1990년 8월31일 통일 조약이 맺어졌고 1990년 9월 20일 두 국회로부터 압도적인 찬성을 받았다.
1990년 10월 3일 동독은 공식적으로 사라졌고 그 영토들은 연방 공화국으로 귀속됐다. 동, 서 베를린은 연방 공화국의 수도로써 다시 합쳐졌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콜은 오데르-나이세 라인 동쪽의 독일 영토는 폴란드의 땅으로 인정하며 그 권리를 포기했다.

4-2. 통일 독일의 연방수상: 1990년 드레스덴에서,통일은 콜을 범접 불가한 위치로 올려놓았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이후 처음으로 모든 독일인들이 참가한 1990년 선거에서 콜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사선에 성공했다.

5. 남북한과 동서독의 통일조건 차이점 관찰(남북한 독일 통일조건 차이점/The Di fferent point for Unification of Divided Country): 1).

첫째, 중요한 점은 ‘자결권’에 있다고 보며 “남북한의 통일도 북한 주민이 통일을 스스로 원할 때만이 완전하게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보여짐니다.

둘째, 경제력을 키워 우월권 위치에 있어, 통일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현실적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이해관계국들과 신뢰와 친분을 갖고, 이들 국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힘의 논리로 보여 짐니다.

넷째,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하도록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현실로 보여주어야 한다. 식량 및 인도적 지원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북한 주민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그들의 마음을 잡아야 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6. 후기: “독일 통일로 1700만 동독 주민들이 누리게 된 자유는 돈으로 환산(換算)할 수 없다”고 생각되며. 2400만 북한 주민들이 배불리 먹고 자유롭게 말하고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많은 통일 비용을 지불한다 해도 값진 것이리라 생각되며, 이 땅에 평화가 연구적으로 보장되고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중국과 유럽까지 여행할 수 있다면, 20세기에 통일을 이룬, 예멘, 베트남 및 독일 중에서 독일 통일만이 피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달성되었다면, 독일의 통일 경험에서 우리도 살아 있는 교훈(敎訓)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사료 됩니다.



-‘*다음편에는 불란서의 아리랑 사랑편을 연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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