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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에 위치한 쌍릉: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인골 분석 결과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update; 7/20/2018


전라북도 익산에 자리잡고 있는 쌍릉은 남북으로 2개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안의 구조는 백제 후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며, 무덤의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능(大王陵),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능(小王陵)라고 부른다.

오래전 조사에서 무덤은 이미 도굴이 되어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다행히 대왕묘 안에서 나무로 만든 관이 일부 발견되었다.

유물과 현실의 구조 및 형식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비슷하여 백제 후기의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학계의 반응이이었고, 근처에 미륵사가 있어서 미륵사를 처음 만든 백제의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었으나 그동안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쌍릉의 두 무덤 가운데 대왕묘에서 발견된 인골을 2018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7세기 사망한 큰 키 남성 노년층의 신체 특징으로 확인되었다고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는 2018년 7월 18일(한국날짜) 발표했다.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인골 분석 결과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익산시 석왕동의 백제 시대 무덤으로, 대왕릉과 소왕릉이 180m가량 서로 떨어져 있음
* 서동 설화: 무왕이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연하여 왕위에 오르고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향가 [서동요] 의 배경 설화

쌍릉의 존재는 [고려사] 에서 처음 확인되며, 고려 충숙왕 때(1327년) 도굴되었다는 사건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부터 고조선 준왕이나 백제 무왕의 능이라는 설이 있었다. 1917년 조선총독부는 쌍릉을 단 며칠 만에 발굴하면서 백제 말기의 왕릉이거나 그에 상당한 자의 능묘라는 것은 확인했지만, 1920년 고적조사보고서에 단 13줄의 내용과 2장의 사진, 2장의 도면만 공식기록 전부로 남겨놓았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익산시와 공동으로 쌍릉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석실 끝부분에서 여태까지 그 존재가 알려진 바 없던 인골 조각이 담긴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100년 전 일제가 발굴하면서 다른 유물들은 유출했지만, 이는 꺼내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 인골 자료가 무덤의 주인과 연결된다면, 백제 무왕의 능인지를 결정짓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물리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참여시켜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고, 102개의 조각으로 남아있던 인골을 분석한 결과, 성별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하여 산출한 결과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추정되며, 19세기 조선 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로 보인다. (참고로, [삼국사기] 에는 무왕에 관한 묘사로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 라고 되어 있다. 639년에 작성된 [미륵사지 서탑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대왕폐하’로 불린 기록도 있다.) 또한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연구팀은 내렸다.

최신 공학기술이 반영된 이번 연구에서는 뼈의 3차원 입체(이하 3D) 모형화와 3D 프린팅을 통해 여러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한 디지털 자료도 구축했다.

▲ 600년에 즉위하여 641년 사망했다는 무왕의 재임 기록으로 보아 10대나 20대에 즉위한 경우 무왕의 사망 나이가 남성 노년층으로 추정되는 쌍릉의 인골 추정 나이와 비슷하며, ▲ 사망 시점이 7세기 초반부터 중반 즈음이라는 인골 분석 결과는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같은 시기에 왕권을 확립한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는 역사적 가능성을 한 걸음 더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Source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